“17년전 연평도 무기증강 건의서도 올렸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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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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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5도 지휘관 출신 해병대 예비역 장성 3人의 탄식

황의돈 육군총장, 전방 경계태세 점검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진행된 한미 연합훈련 마지막 날인 1일 황의돈 육군참모총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사단을 방문해 전방 경계초소(GOP)의 작전상황을 보고받고 경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황의돈 육군총장, 전방 경계태세 점검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진행된 한미 연합훈련 마지막 날인 1일 황의돈 육군참모총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사단을 방문해 전방 경계초소(GOP)의 작전상황을 보고받고 경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지난달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을 감행했을 때 해병대 출신 예비역 장성 A 씨는 오히려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북한이 연평도를 점령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지금의 전력과 인력으로는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연평도를 점령하는 데 하루면 되지 않겠는가. 북한이 기습공격으로 섬을 점령한 뒤 군인과 민간인을 억류하고 정치적 협상을 하는 사태까지는 안 갔구나.’

이후 전개되는 상황을 보며 안타까웠던 A 씨는 1일 동아일보에 입을 열었다. 그는 먼저 백령도에서 해병대 지휘관으로 일했을 때를 회고했다.

“현역으로 근무할 때 연평도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해라. 북이 연평도를 점령하는 날에는 대한민국 해병대는 끝장이다. 해병대의 역적이 안 되려거든 정신 바짝 차려라. 연평도가 북한의 도발 위협 지역 제1번이다’라고….”

○ 17년 전 연평도 북 도발 위협 경고


A 씨는 17년 전 김영삼 정부 시절의 국방개혁 추진 당시로 기억을 돌렸다. 김영삼 정부 초대 국방 수장을 맡은 권영해 장관은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젊은 영관급 장교들을 불러 모아 자유롭게 토론하며 국방개혁의 밑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당시 해병대가 개혁의 선봉에 섰습니다. 미국 해병대 모델을 바탕으로 인력은 줄여도 정말 북과 붙어 싸울 수 있는 ‘똘똘한’ 부대를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정교한 개혁안을 마련했습니다. ‘북이 연평도를 점령하면 대통령이 전쟁을 감수하고 재탈환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러면 대비해야 한다’고 했고 육군도 동의했습니다.”

현장 부대장들도 20년 동안 같은 건의를 했다. 해병대 출신 예비역 장성 B 씨는 “북한의 포 공격에 대한 우리 대응력의 취약성, 장병 안전을 위한 대피시설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건의했다”고 말했다. 동료 예비역 장성 C 씨도 “북한으로의 기동성 확보를 위해 연평도에 헬기 착륙장을 만들자는 보고서를 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들 예비역 장성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 시절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빨리 감지할 수 있도록 육군과 해군이 가진 무인항공기 수집정보를 해병대가 공유할 것을 지시했지만 이 역시 실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B 씨는 “우리의 건의가 왜 묵살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요구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육군의 텃세에 해병대는 ‘왕따’


해병대의 오랜 건의는 왜 번번이 묵살됐을까. A 씨는 “전력 증강과 인력운용 개선안을 올리면 우선 해군에서 걸리고 이것을 풀어야 할 합동참모본부는 모르는 체했다. 육군이 지배하는 합참의 누구도 해병의 외침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합참 지휘부가 북한이 6·25전쟁 때 그랬던 것처럼 서해 5도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C 씨는 “군이 서해 5도의 전략적 가치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북의 공격 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군 수뇌부의 해병대 건의 무시와 서해 5도 경시 풍조가 이번 사건을 낳았다는 주장이다.

전력도 인력도 충분하지 않고 건의는 번번이 묵살당하는 해병대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 상태라고 예비역들은 증언했다. B 씨는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주어진 자원과 인력으로 가능한 한 많은 훈련을 했다”고 회고했다. C 씨도 “이미 폐기 처분된 해안포를 연평도에 전시용으로 들고 와 설치했지만 닦고 조이고 기름 쳤다”며 “해병대는 전시나 평시나 악조건 속에서 어려운 길을 걷는다는 자긍심 하나로 버텼다”고 말했다.

○ 급변사태 대비 전진기지로

예비역들은 “병력보다는 전력 증강이 시급하다”며 “북한이 도발하면 해병대가 즉각적으로 한 펀치를 날릴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일은 해군과 공군이 받쳐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실지(失地)를 재빨리 수복할 전력은 해병대”라며 “북한이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해병대 개혁은 통일문제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A 씨는 “연평도가 당한 23일 밤에 이명박 대통령이 보복을 결심하고 한 방 날릴 줄 알았습니다. 북한의 서해 해군기지 등 서쪽에 하나, 동쪽에 하나 정해서 날리라고 하면 5분이면 됩니다. 국민들에게 보여줄 때입니다. 그래야 북한의 굴레에서 벗어납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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