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지친 일상에 휴식 같은 영화…'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동아닷컴 입력 2010-09-24 12:03수정 2010-09-2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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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언젠가부터 이게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의문이 생긴 서른 한 살의 저널리스트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용기를 내어 정해진 인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보기로 한다.
생각은 마음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생각과 마음이 다를 때 따라야 할 것은 무엇일까.

신작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리즈(줄리아 로버츠 분)는 '마음'이 답이라고 말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년간의 방황이 가져다 준 결론이었다.

안정적인 직장, 젊고 자상한 남편,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맨해튼의 아파트. 이러한 조건을 두고 우리의 머리는 이렇게 계산할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지. 남들이 부러워할 거야. 뭘 더 바라겠어.

아마도 8년이라는 결혼 생활 동안 리즈를 지탱해 온 것 역시 이러한 머리의 계산이었을 것이다. 성공적인 삶이라 평가 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하나씩 갖추고 멋진 연하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그는 사회가 말하는 행복의 요건들을 마치 자신이 원하는 행복의 요건들인 것처럼 여기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8년의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주요기사
▶8년간의 결혼 생활, 그리고 이혼
일, 가족, 사랑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무작정 일년 간의 긴 여행을 떠난 리즈는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사진)에서 자유롭게 사랑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밤중에 홀로 일어나 생애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를 한다. '하나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알려주세요!'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여전히 수십 가지의 꿈을 꾸며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남편, 그리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 어느덧 그 속에 젖어 무미건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자신. 이 모든 것들이 문득 참을 수 없게 느껴진 것이다.

누구나 가진 것을 놓기는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 내가 행복한 건지 불행한 건지 삶이 지루한 건지 원래부터 이랬는지 그 경계 따위는 흐려져 버리고 만다. 다들 그렇게 사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별수 있느냐는 말은 교과서에 나오는 가르침 같아진다.

하지만 리즈는 어느 순간 분명히 깨닫는다. 이제 더 이상 삶이 전과 같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이대로 계속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그는 이혼을 결심한다.

'내 8년간의 생활이 이 박스 몇 상자에 모두 담겨버리다니.'

치열하게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끝은 의외로 간단했다. 법정에서 남편과 격렬한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지만 막상 남편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울 메이트라 여긴 매력적인 연하남을 만나 금세 데이트를 시작했지만 이혼 후 비워진 자신의 인생을 채워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낸다. 더 이상 맥박이 뛰지 않는 자신을 찾아야겠다고. 그리고 1년간의 여행을 떠난다.

▶4개국 4색의 여행지, 여전히 매력적인 줄리아 로버츠
기도로 마음을 치유하고자 찾아간 아쉬람의 명상실을 나서며 리즈는 "명상실을 어떻게 꾸밀지 밖에 생각이 안 난다"고 토로한다.

영화의 덕목 중 하나가 대리만족이라면 이 영화는 그 기능에 너무나 충실하다. 리즈의 삶의 터전이었던 모던한 뉴욕과 형형색색 화사한 빛깔의 먹을 것이 가득한 이태리,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인도와 파란 바다가 황홀한 발리. 각 여행지의 특성을 반영해 지구, 공기, 불, 물의 4가지 테마로 표현되었다는 각국의 영상미는 자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잊어버린다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가지 않아도 보고, 먹지 않아도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와 더불어 얼굴 가득히 퍼지는 줄리아 로버츠의 (여전히!) 매력적인 웃음과 소박하면서도 멋들어진 스타일은 영화의 영상미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그러나 충분히 진지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인생의 성숙기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방황하는 30대 여성의 모습을 맞춤옷처럼 잘 그려내었다.

사실 이러한 영화 속 여행은 일반인들에게는 환상에 가깝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1년간 외국을 여행하다간 파산을 면하기 어렵다. 긴 공백 후 돌아왔을 때 행여 경쟁에서 뒤쳐지지는 않을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여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푸념을 내뱉을 수도 있다. '자아를 찾는 일도 돈이 있어야 하는 군.'

하지만 이처럼 꿈과 같은 여행을 통해 영화가 던지는 진지한 질문들은 한번쯤 곱씹어 볼만 하다. 주인공 리즈와 그가 여행을 통해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영화 구석구석 우리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툭툭 던진다.

'마음껏 먹고, 큰 바지를 사러 가자.'

피자를 앞에 놓고 먹기를 주저하는 여행지의 친구 소피에게 리즈는 말한다. 다이어트의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 여성이라면 이 말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살을 빼고 아름다워지는 것도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라면,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괴로워하는 것도 행복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 이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질문의 사슬이 먹음직스러운 피자 위로 펼쳐진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르기로
얼굴 가득히 퍼지는 줄리아 로버츠의 웃음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명상실을 어떻게 꾸밀지 밖에 생각이 안나요!'

기도로 마음을 치유하고자 찾아간 아쉬람의 명상실을 나서며 리즈는 이렇게 실토한다. 인도에서 향을 피우고 가부좌를 한다 해도 자기가 남기고 온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떠나오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을 터. 명상 시간이 끝나기만 기다린다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는 것 보다 나은 것이 무엇일까. 리즈는 이같이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데 대한 수많은 질문에 부딪히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나간다.

'나는 어렸고 생각이 많았지. 그리고 늘 술에 취해 있었어.'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과거가 있고 지우고 싶은 실수가 있다. 아쉬람에서 만난 리차드는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거칠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에게도 뼈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다. 젊은 날 무책임한 방황으로 가족에게 큰 상처를 입힌 그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또한 스스로를 어떻게 용서하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해성사를 한다.

'상처가 있고 그로 인해 두려운 것은 당신과 같소. 하지만 당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이오!'

자신의 구애를 거절하고 뒤돌아서는 리즈에게 필리페(하비에르 바르뎀 분)는 소리친다. 사랑으로 인한 상처가 있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욱 두려워지는 것은 인지상정. 여행을 하며 비로소 자신의 균형을 찾게 되었다고 생각한 리즈는 필리페와의 새로운 사랑이 그 안정을 깨어버릴까 두렵다. 내면의 안정에서 오는 행복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 사이에서 다시 한번 균형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결국 리즈는 생각이 아니라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르기로 택한다. 사회가 강요한 틀 뿐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틀 역시 벗어나기 위해서다.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850만부가 팔린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원작 소설의 깊이와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영화는 원작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오래된 속설이 다시 한번 재현된 것일 수도 있고, 책과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상 각기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원작이나 영화가 동일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리즈가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노력과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하지만 동시에 일탈을 하지 않기 위한 변명을 수십 가지도 더 가지고 있다. 돈과 시간과 가족과 체력과 회사와 각종 할부금의 만기일까지. 하지만 진실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용기가 아닐는지.

정주현 영화진흥위원회 코디네이터 janice.jh.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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