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日아침드라마에 20세기형 현모양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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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9일 16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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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종영을 앞둔 일본 NHK 아침드라마 '게게게의 아내'(ゲゲゲの女房). 잔잔하다 못해 싱겁기까지 한 드라마다. 가난한 신인 만화가의 아내가 남편과 아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하며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는 얘기가 대강의 줄거리다.

불륜과 배신을 소재로 아침부터 여배우들이 눈 부릅뜨고 고래고래 악쓰는 한국의 막장드라마들과는 전혀 딴판이다. 하지만 싱거운 이 아침드라마는 지금 일본에서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TV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톳토리(鳥取)현의 작은 마을에 관광객이 몰리고 '게게게의 아내'와 관련된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등 오프라인에서도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게게게의 아내'는 일본 인기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본명: 무라 시게루)의 아내 무라 누노에 씨의 자전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한 작품이다. 미즈키 시게루의 대표작인 '게게게의 키타로'(ゲゲゲの鬼太郞)를 참조해 '게게게의 아내'라는 독특한 제목이 나왔다.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잘 나갔던 것은 아니다. 싱거운 스토리 탓인지 올해 3월 '게게게의 아내' 첫방송 시청률은 14.8%(비디오리서치 간토지구 조사)에 불과해 NHK 아침드라마로서는 가장 낮은 첫 회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시청률은 점점 높아졌다. 6월 처음으로 20%대를 넘어선 뒤 시청률 1위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게게게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싱거운 아침드라마가 이처럼 대박이 난 가장 큰 비결로는 여주인공 무라이 후미에(마츠시타 나오 역)의 20세기형 일본 '현모양처' 스타일이 꼽힌다. 이 작품에서 무라이 후미에는 2차 대전 중 일본군으로 참전했다 왼팔을 잃은 장애인 만화가 무라이 시게루(무카이 오사무 역)의 순종적인 아내로 등장한다.

무라이 후미에는 1961년 2차대전 전범국 일본이 연합군에 패한 뒤 경제가 어렵던 시절 부모의 뜻에 따라 무라이 시게루와 결혼한다. 맞선을 본지 겨우 5일 만에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당시 시골에 살던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가 짝지어준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 무라이 시게루는 만화 그리기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다. 하지만 그 이외의 것엔 관심도 없고 무능력하다. 결혼식에서 하객들이 모두 들을 정도로 방귀를 뀌거나 사소한 일에 버럭 화부터 내는 등 사회성도 부족하다. 당장 쌀을 살 돈도 모자라는데 그즈음 일본에 처음 나왔던 카레를 사오는 등 개념 없는 남편이기도 하다.

무라이 후미에는 이런 부족한 남편을 극진히 보필한다. 남편의 찌질한 모습에 상처받고 속을 끓일 때도 많지만 겉으로는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인내하고 가슴 속으로 아픔을 삭이며 20세기 일본 '현모양처'들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간다.

신인 만화가인 남편의 돈벌이가 시원치 않지만 절약하는 생활로 살림도 키운다. 아이들이 태어난 뒤엔 육아에도 정성을 쏟는다. 자신의 삶보다 가족과 집안을 위해 살고 모든 것을 헌신하는 희생적인 아내와 어머니인 것이다.

젊은 일본 여성들이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요즘 사라져버린 현모양처에 대한 향수가 게게게 열풍을 일으켰다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또 나이 든 주부 시청자들의 경우 자신이 살아온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한 무라이 후미에를 보면서 동질감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정이 깊었던 1960년대 일본 도시 변두리 지역과 시골을 보면서 아련한 그리움을 갖게 되는 것도 높은 인기의 비결로 꼽힌다.

무라이 후미에를 연기하는 여배우 마츠시마 나오의 열연도 돋보인다. 사실 마츠시마 나오는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인상이 강해서 현모양처보다는 현대 전문직 여성 역할이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녀는 이처럼 드라마 캐릭터와 상반된 자신의 외모를 참고 또 참는 어머니 세대의 표정과 눈빛 연기로 잘 극복했다. 실제로는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화려한 경력을 지닌 마츠시마 나오는 '게게게의 아내'를 통해 톱스타로 각광받고 있다.

허구 속의 얘기가 아니라 실존인물들의 실제 삶을 토대로 했다는 점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다. 무라 누노에 씨는 남편 미즈키 시게루와 함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드라마 속 에피소드를 직접 말하기도 했다.

'게게게의 아내'는 내년에 일본에서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대표적인 일본 만화 '게게게의 키타로' 못지않게 싱거운 아침드라마 '게게게의 아내'도 일본 대중문화계에서 대박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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