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2부]<1>‘짝짝이 안경’ 부끄럽지 않습니까?

동아일보 입력 2010-07-27 03:00수정 2010-07-2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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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중 잣대는 이제 그만
기본으로 돌아가자
[■ 맞혀 보세요

◇한국 정치 시사 문제: 다음 성명이나 발언은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이 한 것일까요?

1.“○○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했다. 사이비 교주에게 맹종하는 광신도들을 보는 것 같다. 반(反)의회, 반국민, 반민주적 행위로….”

2.“국민을 억압하고 위기를 심화시키는 악법의 무더기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에게 남아있는 최후의 수단(국회 점거)을 쓰고자 한다.”

3.“끝까지 합의되지 않으면 다수결로 처리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다수결 원칙은 ○○당이 전부터 강조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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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당은 다수의 힘으로 불법 날치기한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날치기 사회를 본 국회의장은 사퇴해야 한다.”

※정답은 기사 아래쪽에 있음.]
신문 정치면을 유심히 읽는 독자라도 맞히기가 쉽지 않은 ‘최고 난도’ 문제다. 발언을 한 당사자도 헷갈릴지 모른다. 그만큼 한국 정치권은 이중 잣대에 익숙하다. 이중 잣대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이다. 남에게 적용하는 잣대와 내게 적용하는 것이 다르고, 이해관계 이념 친분에 따라 어제 했던 말과 오늘 발언이 다르다. 툭하면 벌어지는 국회 본회의장 점거도 내가 하면 ‘구국의 일념’, 남이 하면 ‘물리적 폭거’가 된다.

○ ‘구국의 일념’ vs ‘물리적 폭거’

2007년 12월 중순 17대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한나라당은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했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은 BBK 수사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의장석을 점거한 것. 당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BBK 수사 특검은 이명박 후보를 끌어넣어 어떻게 해서든 대선 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정략”이라며 “온몸을 던져 법치주의를 지키고, 대선을 공정하게 치러 국민 주권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년 후, 대통령 선거로 이제 여야가 바뀐 2008년 12월 중순. 한나라당이 추진하던 신문법 방송법 등 미디어관계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등에 반대하던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했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경비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일과 등산용 밧줄로 서로의 몸을 묶는 사상 초유의 ‘인간 사슬’까지 동원했다. 한나라당은 “자해 정치를 위한 ‘생쇼’” “국민은 몸싸움 국회를 원하지 않는다”라며 국회 정상화를 요구했고, 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했던 행동은 생각하지 않는다”며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민주당의 국회 점거를 맹비난하던 한나라당은 불과 7개월 후인 2009년 7월 다시 한 번 국회를 점거했다. 여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 민주당이 미디어법 통과를 막기 위해 본회의장을 점거할까 봐 이를 차단하기 위한 사전점거였다.

정치권 이중 잣대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방자치단체법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의 3선 이상 연임을 금지한 조항(87조 1항). 지자체장이 장기 집권할 경우 생기는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것이 이 조항의 입법 취지다. 하지만 지자체장 공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은 연임에 제한이 없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지자체장의 전횡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 3선 이상 연임을 금지해야 한다면 그 단체장을 공천하는 힘을 가진 지역구 국회의원의 임기는 더 제한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기준은 필요할 때마다 바꾸는 것?

2002년 6월 경기 양주에서 기동훈련을 하던 미군 장갑차에 치여 여중생 2명이 숨지자 그해 겨울 서울 광화문에서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시작됐다. 효순, 미선 양 사건이다.

반면 2008년 7월 금강산을 관광하던 박왕자 씨가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했을 때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한국진보연대는 성명을 통해 “사건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해 남북관계 경색을 추구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국민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면서도 “남북관계 전반에 어려움을 조성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위험성이 불분명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한 달 이상 도심이 마비되는 시위를 하지만 중국산 식자재는 농약, 납 등 위해성이 분명히 드러나도 정치이슈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국민의 생명권, 건강권도 ‘누가 피해를 줬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정책도 오락가락한다.

2007년 6월 부동산 시장이 경기 동탄 2신도시 예정지 발표로 시끄러워졌다. 정부는 수도권 집중화 및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해 경기 화성시 동탄면 일대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당시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고 각 지방에 혁신도시를 추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행정부처까지 이전하려는 상황에서 수도권 집중화를 부추길 동탄 2신도시 건설은 “정부가 상황 논리에 쫓겨 모순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 이중 잣대 심화되면 사회적 무기력감 커져

미국 선거에선 후보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공격의 하나는 ‘플립플롭(flip flop·말 바꾸기)’이라는 비판이다. 사안에 따라 말을 바꾸는 ‘플립플롭’은 미국 사회에서는 ‘거짓말쟁이’라는 말과 사실상 동의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적으로 이중 잣대에 무감각한 편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적과 나를 철저히 구분하는 사회 분위기 △이로 인해 굳어진 사회구성원들의 이분법적 사고 △내부비판은 적을 이롭게 한다는 생각 등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 전체가 철저히 ‘진영 논리’에 함몰되다 보니 잘못된 행위도 ‘우리 편’일 경우 관대하게 대한다”고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이중 잣대에 함몰되는 구조가 생긴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중 잣대 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정치문화는 물론 시민의식이 퇴보하고 사회구성원 사이에서 ‘우린 역시 안 돼’라는 좌절감과 무기력감이 확산된다”며 “이는 결국 사회발전 동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정답

1. 대통합민주신당 김현미 대변인, 2007년 12월 14일 한나라당이 당시 BBK 특검법과 수사검사 탄핵안 처리에 반대하며 본회의장을 점거하자

2.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 2008년 12월 26일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등 법안의 본회의 통과를 추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본회의장을 점거하며

3. 한나라당 조해진 대변인, 2009년 12월 21일 새해 예산안이 민주당의 반발로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지자

4.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 2005년 12월 23일 당시 열린우리당이 사학법을 다수결로 통과시킨 데 반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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