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구속영장 항고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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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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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여중생 살해 및 시체 유기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이모군(19)에 대해 다섯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네 차례 기각하고 마지막에는 각하했습니다. 구속영장 발부를 둘러싼 해묵은 마찰이 재연됐습니다.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영장 항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 제도 도입으로 구속되는 피의자가 늘고 검사만 유리해진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두 주장을 함께 소개합니다.》


법원, 통일된 구속기준 가질 것

美-日-英등 시행… 피의자도 재수사 피해 줄어


인신 구속은 중요한 일이므로 형사소송법은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되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을 때에는 구속할 수 있도록 정했다. 그런데 구속영장 발부와 관련하여 법원과 검찰 간에 왜 자주 마찰이 생길까?

법원과 검찰의 판단이 서로 다른 것 자체는 어느 정도 예상하는 일이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다. 현재는 영장담당 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면 검찰은 재청구만 할 수 있다. 기각 처분이 적정한지를 심의하는 절차는 없다. 기각 처분의 이유에 심각한 논란이 있어도 이에 관한 심판을 받을 수 없어서 처분을 고칠 수 없고, 일반적인 구속 기준을 정하는 일도 어렵다. 재청구를 하여도 같은 법원의 동료 판사가 재심사를 하므로 실익이 없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재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승복할 수 없으면 상급 법원에 불복 신청을 하여 다시 판단을 받는다. 상급 법원의 판결문에는 하급 법원의 판단이 맞는지 그른지와 그 이유를 기재하므로 최종심의 판결이 선고되면 사례별로 판례가 생긴다. 상소 제도는 이와 같이 잘못된 처분을 바로잡고 법령 적용의 기준을 세우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구속영장에 관해서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1심 법원의 구속영장 결정에 대해 상급 법원에 불복할 수 있는 영장 항고 제도를 두고 있어 마찰을 제도적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원은 유독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서는 상급 법원에 불복 신청하는 제도를 인정하지 않아서 갈등이 생긴다.

영장 기각 처분에 대한 항고 절차를 마련하면 상급 법원이 1심 법원의 영장 결정에 대해 다시 심사하여 오류를 시정할 수 있고 그런 판례를 통해 구속 기준을 정립할 수 있다. 구속 기준이 정립되면 검찰의 영장 청구 기준이 더 선명해지고, 영장 기각에 대하여 검찰도 승복할 것이다. 국민도 어떤 경우 구속이 되는지 예측할 수 있어서 구태여 거물급 변호사나 전관 변호사를 찾아가서 사건을 의뢰할 필요가 없다. 유전무죄나 전관예우라는 말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영장재청구 절차에 의하면 피의자는 몇 번이고 다시 수사기관에 불려가서 보완조사를 받는 불편을 겪는다. 그러나 상급 법원의 영장 항고 심사는 1심 법원에서 심사한 기록만 가지고 당부를 판단하므로 불편을 피할 수 있다. 또 상급 법원의 심사 결정 기간을 최대한 짧게 잡아 신속한 결정을 내리도록 정하면 영장재청구에 비해 시간적으로도 효율적일 수 있다.

국회에 영장 항고제 도입을 위한 법안이 제출돼 있다. 국회 차원에서 사려 깊게 논의해 영장 항고제를 도입함으로써 검찰과 법원의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불안한 눈으로 이 마찰을 바라보는 국민을 안심시키며, 나아가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를 기대한다.

구상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구속수사 늘려 인권보장 역행▼

‘조건부 석방제’ 도입해 불구속수사 정착을


1986년 경기 화성에서 젊은 여인이 성폭행 후 살해당하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피의자가 구속되고 가혹행위를 당한 피의자는 자백을 한다. 사건이 해결되는 듯하였으나 피의자가 범인이 아님이 밝혀진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의 줄거리이다.

2010년 서울의 경찰서에서도 영화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상습절도 혐의로 피의자가 구속된다. 경찰에서 일부 범행을 부인하지만 가혹행위를 못 이기고 자백한다. 이렇듯 피의자를 구속하여 자백을 획득하는 것은 수사기관으로선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수사기관은 영장항고 제도의 도입을 주장한다.

수사기관이 도입하려는 영장항고 제도의 핵심은 영장이 기각된 사건을 상급심에 항고하여 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를 구속하는 것이다. 수사기관으로서는 영장항고 제도의 도입으로 구속이 증가할 경우 자백을 받기 쉬워 편리한 점이 많다.

그러나 인권 보장이라는 문명국가의 기본원리에 비추어 볼 때 수사의 편의를 위해서 영장항고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실현한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우리나라의 구속자 수는 지나치게 많다. 인구 10만 명당 구속 기소된 사람의 수는 일본과 독일의 2∼5배에 이른다.

영장항고 제도는 구속의 확대를 초래하는 점 이외에도 여러 문제가 있다. 구속 여부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늦어져서 피의자는 언제 구속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인다. 검사는 영장이 기각돼도 재청구나 항고를 통하여 불복할 수 있는 반면 피의자는 항고 기간 중에 구속을 면할 수 없어 제도의 이점은 주로 검사가 누린다. 이런 이유로 변호사의 과반수가 영장항고제의 도입을 반대했다.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피의자가 수사 또는 재판 기간 중에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해법은 없을까?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처럼 영장을 발부하는 단계에서도 출석보증이나 주거제한 등 출석을 담보할 수 있는 조건을 붙여 석방하는 제도가 최선이다. 조건부 석방 제도를 도입하면 서민이 다양한 조건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을 수 있다. 피의자가 도주를 하는 사례도 줄일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옥중에서 겪는 고통은 다 말할 수가 없는데, 가벼운 죄수는 그 죄가 무겁지 않은데도 고통을 당해야 하고, 억울한 죄수는 엉뚱하게 잘못 고통을 당하니 이를 신중히 살펴야 한다”면서 인신구속의 폐해를 역설했다. 2010년에 억울한 구속을 당한 사람에게 국가가 보상한 액수가 61억 원에 이르니 정약용 선생의 말씀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영장항고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기에 앞서 조건부 석방 제도의 도입을 논의해야 하는 것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본 1986년의 이야기가 2010년에도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용구 사법연수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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