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1부]<1>당신은 프레임에 갇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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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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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의 프레임 vs 너의 프레임
‘왜 오해와 갈등은 계속되나’ 두차례 직접 실험해보니…

《‘프레임(frame·해석의 틀)은 한국 사회 도처에서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진영은 “이 사업이 대운하와 관련 있다”고 주장할 뿐 사업으로 인한 편익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찬성 진영도 상대 의견의 타당성에 귀를 막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엉뚱한 프레임화’도 있다. 영남 사람이라고 이념적으로 보수적일 이유는 없고, 호남 사람이라고 진보적일 이유도 없다. 그러나 선거 때면 영남에서 보수정당 표가 많이 나온다.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치사회적 현안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게 아니라 출신 지역에 따라 정치성향을 프레임화해버린 것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객관적인 사실(fact)조차도 자신의 준거집단, 지지 정당, 출신 지역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는 점이다. 프레임 짓기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사실을 왜곡해 인식할 정도면 문제가 심각하다. 여기에 주목한 특별취재팀은 우리가 얼마나 자기만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지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취재팀은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나은영 교수(사회심리학)에게 자문해 △집단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허위사실에 대한 반응 △앵커링(Anchoring·닻 내리기) 효과 등 3가지 영역에서 프레임 측정 실험을 진행했다. 14일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21명을 대상으로 1차 실험을, 16일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21명을 대상으로 2차 실험을 했다. 1, 2차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A, B조로 나눠 세부적으로 다른 질문을 받았다.

대학생 대상 1차 실험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21명이 14일 오후 프레임에 관한 실험을 하는 장면. 이훈구 기자
대학생 대상 1차 실험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21명이 14일 오후 프레임에 관한 실험을 하는 장면. 이훈구 기자
○ 실제 차이 vs 상상속의 차이

거리에서 여대생이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보통 이렇게 짐작할 것이다. 젊은 대학생들은 ‘그게 뭐 어때’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기성세대는 눈살을 찌푸릴 거라고.

하지만 실험 참가자들의 답변을 받아봤더니 대학생과 기성세대 모두 ‘여대생 거리 흡연’에 부정적이었다. 부정적인 정도의 차이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기성세대는 나보다 훨씬 더 부정적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마찬가지로 회사원들은 ‘대학생들은 관용적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대학생과 회사원들은 여대생 거리흡연과 관련해 ‘고정된 프레임’을 통해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을 ‘집단적 무지’라고 한다. 쟁점에 대한 다른 집단의 의견을 잘못 추측하는 현상이다. 서로 의견 교환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

경북대 박정순 교수는 1990년대 초 대구와 광주 시민에게 각각 ‘당신 이웃사람들이 상대 지역민을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들은 이웃의 지역적 배타성이 실제 조사 결과보다 2배 이상 더 강할 것이라고 짐작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상도 사람은 전라도 사람을 싫어한다’는 프레임으로 이웃을 본 것이다.

전자는 세대간 차이에 대한 프레임이다. 후자는 지역감정에 대한 프레임이다. 인식 차에 대한 잘못된 프레임은 집단 간 거리감을 키우며 통합을 저해한다. 나아가 증오를 부추기기도 한다. 나 교수는 “두 집단의 실제 의견 차이는 크지 않음에도 서로 추측한 ‘상상속의 의견 차이’가 커지게 되면 불필요한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거짓사실’을 믿다

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허위사실 두 가지를 실험 참가자들에게 제시한 뒤 ‘이 소식을 접한 뒤 드는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 달라’고 요청했다. 연예계 관련 허위사실로는 ‘여자 연예인 A가 ‘양다리’를 걸친 남자 연예인 B, C와 같은 드라마에 캐스팅됐다’는 내용이었다. 사회문제 관련 허위사실로 ‘검찰이 최근 대기업 오너의 비자금 수사를 위해 계좌추적을 하는 과정에서 오너의 아들과 여자 연예인 A 씨의 스폰서 관계를 발견했다. 이를 취재한 인터넷 매체가 관련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광고를 유치해 문제가 됐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양다리 허위사실을 접한 응답자들은 대부분 “공인답게 행동을 더 잘했으면 좋겠다” 등 바로 믿어버리거나 분노하는 반응을 보였다. 전체 응답자 42명 중 대학생 3명만이 사실 확인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비자금 허위사실에서도 사실 확인보다 “일반 시민들이 모르는 일이 세상에 너무 많다” “돈만 있으면 범죄를 저질러도 입막음 되는 세상”이라며 분노했다.

인터넷의 신속성, 익명성에 힘입어 ‘가짜 사실’이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일이 빈번히 벌어진다. 특히 선거 때마다 흑색선전은 위력을 발휘한다. 지난 대선 당시 ‘김경준 씨가 터뜨린 BBK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대개 선거가 끝난 뒤다.

○ 첫 정보에 얽매이다

대학생, 일반인 실험 참가자 A조에는 “현재 이명박 정부에서 장차관급 이상 공무원 중 영남 출신은 50% 전후다. 당신은 고위공무원(부이사관급 이상)의 몇 %가 영남 출신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B조에는 처음에 제시하는 숫자 ‘50%’를 ‘30%’로 바꿔 질문했다.

각 조에 50%와 30%라는 각기 다른 정보를 준 것이다. 응답 결과는 흥미로웠다. 50%라는 정보를 들은 대학생들은 영남 출신 고위공무원 비율을 55%로, 일반인은 평균 51%라고 추정했다. 30%라는 정보를 들은 대학생들은 평균 39.5%, 일반인은 평균 39.1%로 추정했다. 처음 제시된 정보가 기준점이 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앵커링 효과라고 한다. 사람의 심리에는 처음 접한 정보의 테두리 안에 쉽게 갇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은 거짓사실과 앵커링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사례다. MBC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거짓정보를 생산해내자 공포와 분노는 급속히 확산됐고 밤마다 서울 도심이 점거되는 시위가 한 달 이상 계속됐다. 곧 과학적 반박이 쏟아져 나왔지만 “뭔가 위험하니까 방송이 그랬겠지”라는 불안감이 쉬 가시지 않았던 것은 앵커링 효과다.

○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프레임

특별히 편견이 심한 사람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도 이 같은 실험을 하면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 교수는 “특히 한국 사회는 각자의 프레임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사회 갈등이 심화된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정치권이 프레임이라는 도구를 정치적 목적으로 빈번히 활용한다. ‘고소영 내각’ ‘퍼주기’ ‘부자 감세’ ‘친북’ 등 자극적인 꼬리표를 붙여 경쟁세력을 특정한 방향으로 프레임화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정치세력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경쟁 정당을 부정적으로 프레임화한다. 그렇지만 정치공학에 기반을 둔 한국 정치권의 ‘프레임 남발’은 과도하며 한국 사회를 더욱 틀에 갇힌 사회로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프레임(frame):


심리학에서 시작된 용어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한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사안을 해석하는 방식, 세상에 대한 비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모두 프레임의 범주에 속한다. 프레임은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쉽게 해석하고 일관되게 보도록 이끄는 조력자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시야를 제한하는 검열관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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