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전우&로드넘버원, 불편한 전쟁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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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8일 11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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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근본적으로 이중적이다. 아군과 적군, 군인과 민간인, 삶과 죽음, 폐허와 복구, 이산과 재회 등 전쟁의 이중성을 설명할 수 있는 대립항은 여러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피아(彼我) 모두 패배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전쟁이 승자와 패자로 결말을 맺고 그 참혹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한 자료들이 많은 것도 전쟁의 이러한 이항대립적 속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당사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이지만, 제3자에게는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와 국가 간에 무력을 사용하는 싸움으로서의 전쟁'의 경우에 한한다. 만약 그 전쟁이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이었다면 그 누구도 전쟁의 참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이중성' 운운하며 냉정한 분석의 자세를 취할 수도 없다.

▶ 끝나지 않은 전쟁 6·25

이항대립적인 구도에서 양쪽으로 나뉘었던 전쟁의 참상은 오히려 배가 되어 당사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닌 저들은 적이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의 대상이 되어 피아(彼我)에게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동안 6·25전쟁을 전면적으로 다룬 드라마를 TV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유는 한반도에서 6·25전쟁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정신적 외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8·15해방→3·8선 분단→6·25전쟁→휴전'이라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격동의 시기가 우리 민족에게 남긴 정신적 외상의 근원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드라마에서 다시 확인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런 일이 될 것이다. 6·25전쟁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전쟁의 상흔과 후유증에 주목했던 것은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1975년에 방영된 '전우'에서처럼 방송극에서 6·25전쟁은 평화롭던 일상을 파괴한 침략자로서의 북한에 대한 분노와 이산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족의 파괴된 일상을 복원해야 하는 의무감이 복합되어 있는 극적 소재였다.

냉전 시기의 반공드라마에 이질적으로 통일을 향한 염원이 내재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때로부터 벌써 한 세대 이상의 세월이 흐른 현재, 6·25전쟁은 여전히 반공과 통일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으로 기억되고 있다. 비록 동서 냉전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 대립이 무색해진 상황이라 하지만, 2010년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은 아직 6·25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休戰)'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쟁 발발 이후 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휴전이 유지되고 있는 현실에서 현재 진행형의 6·25전쟁에 대한 객관적 시선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2010년 6월 비슷한 시기에 방영을 시작한 6·25전쟁을 다룬 두 편의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시선이 혼란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1970년대 '전우'를 리메이크한 KBS1TV '전우'는 반공드라마라는 방영 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100%로 사전제작제로 주목을 받은 MBC의 '로드넘버원'은 첫 방영 이후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 구도 때문에 6·25전쟁에 대한 객관적 시선 확보가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두 작품 모두 방영 전의 화제성과 달리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하면서 기대 밖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방영된 KBS1TV '전우'의 주제의식은 반공보다는 반전에 가깝다. 사진제공 KBS.
지금까지 방영된 KBS1TV '전우'의 주제의식은 반공보다는 반전에 가깝다. 사진제공 KBS.

▶ 반공 논란 '전우', 사실은 반전드라마

6·25전쟁 발발 넉 달째. 낙동강 방어전과 인천상륙작전을 기점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압록강으로 북진하다가 중공군의 참전으로 위기에 처한 국군의 상황으로 첫 회를 시작한 '전우'는 이후 전투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전쟁의 실상을 형상화한 드라마이다.

6회까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전우'는 반공보다 반전에 가까운 드라마이다. 국군과 인민군은 물론 유격대의 활약상과 중공군의 상황까지 포괄적으로 다룰 정도로 어느 한 쪽의 시선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을 갖췄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 덧씌워진 반공드라마라는 틀은 온당치 못한 면이 있다.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한 민족이었던 남과 북의 병사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은 6·25전쟁의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일 뿐 반공과 관련이 없다. 13사단 독수리연대 1대대 2소대 소총수가 '빨갱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정도에서 반공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인민군 치하에서 부모님이 반동으로 몰려 총살당한 기억 때문에 인민군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병사의 개인적 처지를 보여주는 상황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반공의 표식을 붙이기는 쉽지 않다.

반면 '전우'가 반전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극적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혀 탈영한 신병이 오직 살아남기 위해 죽은 인민군의 군복을 벗겨 갈아입었다가 진짜 인민군이 되어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히는 상황,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고향으로 가겠다고 탈영을 하던 중공군이 경계를 서던 인민군의 총에 죽음을 당하는 상황, 그리고 국군과 인민군 가릴 것 없이 엄동설한에 경계를 서다가 동사하는 상황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전우'는 피아 구별 없이 전쟁의 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강조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오락적 시선을 거부할 정도로 반전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반전을 강조하기 위해 그려낸 이 드라마의 극적 상황을 들여다보면 여기서는 오히려 반공(反共)의 이데올로기를 읽을 수 있다. 생사가 갈리는 전쟁의 긴장감보다 어딘가 모르게 생경한 전투 장면, 그리고 국군과 인민군은 물론 중공군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흐르는 과잉된 주제음악은 6·25전쟁의 참혹함을 환기시키고 결과적으로 냉전 의식을 자극한다. 이것은 전쟁 세대의 반공의식을 일깨우게 된다.

MBC '로드넘버원'은 전쟁의 참상 자체를 다뤘다기 보다는 전쟁을 소재로 한 가슴 저린 멜로드라마로 해석된다.
MBC '로드넘버원'은 전쟁의 참상 자체를 다뤘다기 보다는 전쟁을 소재로 한 가슴 저린 멜로드라마로 해석된다.

▶ 전쟁 본질 잊은 멜로드라마 '로드넘버원'

이번엔 머슴의 아들과 주인집 딸의 애잔하면서도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로 포문을 연 MBC'로드넘버원'을 들여다보자. 이 드라마는 자신의 의대 학비를 벌기 위해 빨치산 토벌 작전에 나섰던 연인의 잘못된 전사 소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여자와 그 여자를 가슴에 품은 또 다른 남자의 삼각관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6·25전쟁 발발 직후 1년간의 사연을 그린 드라마다.

평생 한 사람의 얼굴만 그리며 사는 꿈을 가진 남자, 그리고 자신의 사랑이 한낱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했다고 분노하면서도 그 사랑이 간절한 남자가 연인이자 어머니 같은 여자를 두고 대립하면서 전쟁 영웅으로 거듭나는 극적 상황은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과 머슴 혹은 지주 계급과 소작농의 계급 구도를 통해 표출되는 6·25전쟁의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이면에 깔고 있지만 '로드넘버원'은 근본적으로 '전쟁이라는 가장 극한 상황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사랑과 전우간의 뜨거운 우정'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비규환 같은 전쟁터의 참상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한 '들꽃 같은 사랑'은 참혹한 전쟁의 실상에 대한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접근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6·25전쟁을 개인적 사랑의 차원으로 전이시킴으로써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이라는 본질을 희석시키고 말았다.

'로드넘버원'이 전쟁의 참상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유도하는 반전드라마가 아닌, 그저 전쟁을 소재로 한 가슴 저린 멜로드라마로 해석되는 것도 그래서이다.

우리 시대 전쟁드라마가 반공과 반전의 경계에서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6.25를 기억해야 할지, 우리 시각에 대한 확립이 필요하다. \'로드넘버원\'의 한 장면. 사진제공 MBC.
우리 시대 전쟁드라마가 반공과 반전의 경계에서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6.25를 기억해야 할지, 우리 시각에 대한 확립이 필요하다. \'로드넘버원\'의 한 장면. 사진제공 MBC.

사실 '전우'나 '로드넘버원'은 6·25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전쟁 세대나 교과서로 6·25전쟁을 학습한 전후 세대 모두에게 불편한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 "전쟁은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유쾌한 일"이라는 고대 철학자 에라스무스의 말을 6·25전쟁의 경우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도 전쟁 세대의 고통과 상처가 고스란히 전후 세대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상흔이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6·25전쟁을 전면에 내세운 전쟁드라마가 여전히 시기상조인 것도 그래서이다. 이처럼 냉전 체제의 붕괴 이후에도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이 지속되는 한 6·25전쟁을 다룬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대립 구도에 초점을 맞춘 반공의 틀에 갇히기 쉽다.

전쟁 세대가 뒤로 물러나고 전후 세대가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는 2010년 현재 시점에서 6·25전쟁의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가 전쟁드라마의 향방을 결정지을 확률이 높다. 이는 곧 '전우'나 '로드넘버원'이 반공과 반전의 경계에서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기억해야 할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 한국인의 치유되지 않은 정신적 외상인 6·25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드라마를 볼 때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다. 전쟁드라마의 이면에 숨겨져 있을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경계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또 더 나아가 끝나지 않은 전쟁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들의 시각이 반공과 반전의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지금 우리는 6·25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드라마평론가 drama@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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