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이 기쁜날”… 온 국민이 피겨퀸 따라 울다가 웃었다

  • Array
  • 입력 2010년 2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228.56점 또 신기록… 아사다와 23점차‘女쇼트 1위는 金못딴다’ 18년 징크스 깨1만5000여 관중 마법 걸린 듯 기립박수

‘강심장’의 눈물  ‘강심장’ 김연아도 이 순간만큼은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쳤고 지금의 기쁨이 가슴을 적셨다.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가 한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강심장’의 눈물 ‘강심장’ 김연아도 이 순간만큼은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쳤고 지금의 기쁨이 가슴을 적셨다.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가 한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차가운 빙판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려봤지만 좀처럼 주체할 수 없었다. 김연아(20·고려대)는 연기를 마친 뒤 흐느끼기 시작했다. 13년 동안 스케이트를 몸의 일부로 여기면서 수도 없이 흘렸던 눈물. 힘들어서 울고 아파서 울고….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팬들에게 눈물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큰 짐 하나를 내려놓았다는 느낌에 가슴 한구석은 더욱 뜨거워져만 갔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승리를 예감한 듯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었다.》

26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에서 열린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의 피아노 선율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4분 9초 동안 빙판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초반 3차례 점프에서 메달 색깔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연속 3회전)에 이어 트리플 플립(3회전),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루프(2회전 반에 이어 연속 2회전 점프)까지 완벽하게 처리했다. 난도가 높은 점프를 깔끔하게 마무리한 그는 거칠 게 없었다. 1만5000여 관중은 마법에 걸린 듯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을 집중하며 쉴 새 없이 탄성을 터뜨린 뒤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한 치의 결점도 없는 연기를 마친 김연아는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키스앤드크라이존에서 기다리다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전광판에 새겨진 점수는 150.06점. 24일 쇼트프로그램에서 따낸 78.50점을 합쳐 228.56점이었다. 세 점수 모두 역대 최고 기록인 완벽한 우승이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 줄 몰랐던 김연아는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목에는 유난히 반짝거리는 황금빛 메달이 걸려 있었다.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대∼한사람….” 더는 따라 부를 수 없었다. 목이 메었다. 눈가는 다시 한 번 촉촉이 젖어 들었다. 여섯 살 어린 나이에 본격적으로 스케이트에 매달렸을 때부터 그토록 갈망했던 목표를 이룬 기쁨과 행복의 눈물이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팬들도 함께 웃고 울었다.

누구나 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을 당연하게 여겼다. 기대가 큰 만큼 심리적 압박은 커져 의외의 성적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5차례 올림픽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선수가 금메달을 딴 적은 한 차례에 불과했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크리스티 야마구치(미국)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석권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뿐이었다. 김연아가 여덟 살 때 TV를 통해 지켜봤던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는 미셸 콴(미국)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김연아는 달랐다. 흔히 말하던 세계 랭킹 1위의 올림픽 징크스마저 후련하게 날려 버렸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꾸준한 훈련과 특유의 자신감으로 정면 돌파했다. “솔직히 어느 때보다 부담이 없었다. 마음을 비우고 하늘에 모든 걸 맡겼다”는 게 그의 얘기. 그만큼 철저한 준비 과정을 통해 자신이 넘쳤다는 뜻이다. 24일 쇼트프로그램에서도 그는 바로 앞서 출전한 아사다 마오(일본)가 시즌 최고점을 기록해 흔들릴 만도 했으나 싱긋 미소까지 지으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역사에 남을 무대였다는 찬사를 들은 그는 세계선수권대회와 그랑프리 파이널, 4대륙선수권대회 우승에 이어 올림픽 제패까지 해 여자 싱글 선수로는 사상 첫 그랜드슬램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에서 에번 라이서첵(미국)은 257.67점으로 금메달을 땄다. 김연아의 기록은 남자 싱글에서는 출전 선수 24명 중 9위에 해당한다.

피겨스케이팅 싱글은 남자 선수들의 점프 난도가 높아 여자 선수들과는 보통 60∼70점 차가 나기 마련이다. 2006년 토리노 대회 때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예브게니 플류셴코(러시아)는 258.33점을 기록한 반면 여자 싱글 우승자 아라카와 시즈카(일본)는 191.34점이었다. 남녀의 장벽마저 무너뜨릴 기세를 보인 김연아는 “남자 점수에 육박한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꿈을 이룬 김연아. 이제 김연아는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김연아가 세운 기록>
○ 한국인 올림픽 피겨 첫 금메달
○ 사상 첫 피겨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그랑프리파이널, 4대륙선수권)
○ 신채점제 적용 이후 한 대회 쇼트-프리 첫 동시 세계 신기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