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유랑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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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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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468명 집단입국, 그 후 5년…본보 ‘그때의 200명’ 3개월 추적
대부분 무직-임시직으로 가구당 月소득 140만원 불과
없는 돈 쪼개 北가족에 보내기도… 20명은 해외에 거주

탈북자 허미은 씨(가명·20)가 25일 서울 강서구의 한 상가건물에서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2004년 7월 입국한 허 씨는 2년째 편의점 식당 나이트클럽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탈북자 허미은 씨(가명·20)가 25일 서울 강서구의 한 상가건물에서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2004년 7월 입국한 허 씨는 2년째 편의점 식당 나이트클럽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북한을 탈출해 중국 등을 거쳐 베트남에 머물던 탈북자 468명이 2004년 7월 27일과 28일 특별기 두 대에 나눠 타고 한국 땅을 밟았다. 사선(死線)을 넘어 자유의 품에 안긴 지 5년이 지났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7월 중순부터 3개월 동안 이들 468명의 삶의 궤적을 추적했다. 취재팀은 대면 인터뷰와 전화 인터뷰, 서면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탈북자 200명의 현재 직업과 소득, 거주 형태, 삶의 만족도 등을 조사했다. 취재 결과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리기 위해 희망을 품고 왔지만 이들의 유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과는 많이 다른 언어와 문화, 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등이 정착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탈북자에 대한 싸늘한 시선 탓에 직장을 구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직장에서 정착하는 건 더 어려웠다. 취재팀이 접촉한 200명 가운데 62명(31.0%)이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특히 취업 연령대인 20세 이상 65세 이하(대학생 제외) 165명 중 48명(29.9%)이 직업이 없었다. 이 연령대에 직업이 있다고 한 117명 중에서도 일용직 20명, 식당 종업원 15명 등 불안정한 직업이 대부분이었다. 현재의 직장에서 1년 이상 일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33명에 불과했다.

안정된 직장이 없기 때문에 소득이 낮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140만 원에 불과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2분기(4∼6월) 가구당 월평균 소득 329만8900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탈북자들의 삶을 경제적으로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북한에 있거나 중국을 떠돌고 있는 가족이었다. 탈북자 중 27명이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 지원금을 북한과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썼다고 대답했다. 한국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탈북자들도 41명이었다.

희망을 안고 한국을 찾았던 탈북자 가운데 일부는 적응에 실패해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입국자 가운데 20명이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7명은 이주 목적으로 해외에 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되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팀이 영국 런던에서 만난 탈북자 6명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영국 정부로부터 실업수당, 자녀 양육보조금, 의료혜택 등을 제공받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때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한국에서는 갖은 차별 등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늘 우리를 가로막았다”고 말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염유식 교수는 “현재 남한의 탈북자가 1만7000여 명인데 이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정부 정착지원 제도의 실효성과 탈북자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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