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원]의원 入閣

  • 입력 2009년 8월 7일 02시 59분


국회의원, 장관, 대학교 총장 등을 두루 거친 원로 A 씨는 ‘어느 자리가 가장 할 만한가’라는 질문에 서슴없이 ‘국회의원’을 꼽는다. 일단 금배지를 달고 나면 4년간 옷 벗을 우려가 거의 없고 이래라저래라 할 사람도 딱히 없다는 것. 그런 국회의원들이 개각 철만 되면 처분을 기다리는 순한 양처럼 목을 빼고 청와대에 안테나를 대기 바쁘다.

▷김영삼(YS) 정부 때 집권 민주계 B 의원은 어느 날 돌연 “우리 영감이 구중궁궐 청와대에 갇혀 지내더니 정치 감각을 잃은 것 같다”고 쏘았다. 그는 며칠 뒤 발표될 개각 명단에서 자신이 빠질 것을 미리 알았던 듯하다. 김대중(DJ) 정부 시절 새천년민주당 중진 C 의원은 ‘철새’ 비난을 무릅쓰고 당적(黨籍)을 옮겨 공동여당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주려는 DJ의 뜻을 받들었다. 2개월 뒤 그가 장관에 임명되고 나서야 정치생명이 걸린 도박을 하고도 싱글벙글했던 이유가 세상에 드러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동영 김근태 씨나 정세균 당의장이 노 대통령의 입각 카드를 받아들인 것도 장관직을 대권 발판으로 여기는 국회의원과 인사를 여당 장악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대통령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그제 “집권 2기를 맞아 적어도 한나라당 의원 3, 4명을 입각시켜야 한다”며 “지금 한나라당 의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당내에선 정권을 함께 만든 여당 의원들이 내각에 들어가는 것이 책임정치 원리에 맞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장관직을 놓고 자천 타천 명단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정치인의 입각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능력이 있다면 적재적소에 기용할 수 있다. 국회와의 소통이나 정무적 감각이 중요한 장관직은 국회의원이 적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본분은 충실한 입법활동을 통해 의회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억지논리와 발목잡기를 돌파할 수 있는 정책자료 수집과 대안 개발에 전념하지 못하고 1년 반을 허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번 당선되면 4년간 의정 성취에 승부를 걸어야 할 사람들이 장관 자리에 너무 군침을 흘리면 국민 눈에 곱게 보일 리 없다. 자칫하면 ‘쇄신론=자리 욕심’으로 비칠 수도 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