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달러가 흔들리는 날

입력 2009-07-08 20:01수정 2009-09-22 01:0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사흘 전 중국 본토와 홍콩 기업 간 무역거래대금 결제가 처음으로 위안화로 이뤄졌다. 중국 국무원이 작년 7월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의 위안화 국제결제 추진계획을 승인한 지 1년 만이다. 2009년 7월 6일은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의 첫발을 내디딘 날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런민은행은 지난달 “특정 주권국가(미국을 지칭) 화폐를 기축(基軸)통화로 사용하는 것은 결함이 많다”면서 ‘슈퍼 통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쑹훙빙의 ‘화폐전쟁’에 담긴 핵심 메시지도 미국 달러화 체제와의 대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 이상 이어진 ‘팍스 달러리엄’(달러가 지배하는 세계경제 질서)은 곳곳에서 도전받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유로화 출범의 배경도 ‘달러로부터의 자유’였다. 브라질과 인도 역시 기존 체제 재편에 호의적이다.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하지만 엔화를 중심으로 아시아 공동통화를 도입하려는 열망은 각계에 뿌리 깊다. 이미 1998년 가나가와대 깃카와 모토타다 교수는 ‘머니 패전’이란 책에서 “지나친 달러 의존이 일본을 망쳤다”며 달러로부터의 이탈을 촉구했다. 국제통화시스템 문제의 민감성은 화폐전쟁이나 머니 패전이란 표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나라들도 당장 전면전에 나설 처지는 못 된다. 중국은 1조9537억 달러의 보유외환 중 7679억 달러를 미국 국채로 갖고 있다. 달러 가치 급락은 막대한 평가손실과 대미(對美)수출 타격을 불러온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외환보유국(1조240억 달러)인 일본도 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다른 나라들도 아직은 ‘달러의 퇴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그러나 미국이 저축은 적고 소비는 많은 ‘배짱이형 경제체질’을 바꾸는 데 끝내 실패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석 달 전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은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경상적자와 재정적자를 외국, 특히 대미(對美) 무역흑자가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 미 국채를 팔아 메워온 순환 구조도 점차 한계에 왔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빚이 아무리 묘한 재간을 부리더라도 자신이 낸 손실을 물어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고 했다. 국가라고 해서 이런 진리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다 팔더라도 국제금융에서 어설프게 대처하면 낭패를 당한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 1위부터 3위까지의 경제대국인 미국 일본 중국 사이에 낀 중간규모 국가다. 통화전쟁을 둘러싼 세계의 흐름과 역사적 과정을 함께 살피면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생존전략이 절실하다. 하지만 나라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집단들조차 이런 인식과 긴장감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2317억 달러 규모의 외환에서 64.6%가 달러 현물이나 미 국채 등 달러 자산이다. 유로, 엔, 위안 등 나머지 통화는 다 합쳐 35.4%에 불과하다. 우선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보유외환을 다양하게 운용하면서, 달러의 대체재인 금의 보유량을 늘리고 각종 국제거래의 결제통화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달러가 흔들리는 날을 내다보고 지금부터 대비해도 빠르지 않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