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로커가 되고 싶은 쌍둥이 이찬규-영규 군

  • 입력 2009년 6월 10일 02시 51분


“레슨받을 형편 안되는데 밴드는 배부른 꿈일까요”

안녕하세요. 서울 유한공고에 다니는 쌍둥이 형제 이찬규 이영규(16)입니다.

저희는 서태지 음악에 귀가 열리면서 록에 빠지게 됐어요. 노래로 자신의 생각이 담긴 음악을 만들어서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제 음악을 듣고 뭔가 통했다는 느낌을 갖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아요.

그런데 록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저희 처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저희가 세 살 때 엄마는 집을 나가셨습니다. 아빠도 외환위기 때 도박에 빠져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과 저희 둘까지 다섯 식구가 살고 있어요. 삼촌은 저희 쌍둥이 뒷바라지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계세요. 빨리 취업을 해서 집안에 보탬이 되려고 실업계고에 갔는데, 음악을 배우려고 하니 꼭 돈이랑 연관되더군요.

일단 교내 악단에서 저 찬규는 트럼펫을, 동생 영규는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어요. 제대로 클래식 공부를 하려면 레슨비가 감당이 안 되고 밴드를 만들자니 작곡이나 보컬 트레이닝을 받을 형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음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난한 실업고생에게 록밴드는 배부른 꿈일까요. 김C 형도 저희처럼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밴드를 만들었고 결국 인정받는 로커가 됐잖아요. 록을 할 수 있다면 뭐든 다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김C 형, 방법이 있을까요.

“록은 열정이 생명… 배우는 게 아니야”
형제와 마주앉은 가수 김C
진짜 음악은 가슴서 나오는 것
악보 못만드는 나도 로커 하잖니
가난 탓하지 말고 지금 시작해

김C(본명 김대원·38)는 다변가였다. 5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C는 방송에서 봤던 무뚝뚝한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이찬규 영규 쌍둥이를 다그치고 달래고 북돋우며 2시간 동안 쉼 없이 말했다. 거침없지만 따뜻한 조언이었다. 처음엔 “김C 아저씨”라고 부르며 어려워하던 쌍둥이 형제도 어느 순간 김C를 형으로 부르고 있었다.

김C는 쌍둥이를 만나자마자 대뜸 “핑계대지 말라”고 했다. 그는 “너희들에게 필요한 건 레슨이 아니고 시작”이라며 “가난 핑계 대면서 네 상황을 합리화하지 말고 밴드를 하고 싶다면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라”고 쏘아붙였다.

“나도 처음엔 완전히 빈털터리였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 기타는 당연히 없었고 칠 줄도 몰랐고 악보도 볼 줄 몰랐지. 하지만 록이 하고 싶어 몸이 터질 것처럼 뜨거웠어. 록은 배우는 게 아니라 그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하는 거야.”

록밴드 ‘뜨거운 감자’의 리더인 김C는 앨범 5장에 수록된 40여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한 싱어송라이터. 하지만 그는 아직도 음을 악보로 옮길 줄 모른다. 그는 평소 좋은 악상이 떠오르면 거기에 가사를 넣어 노래를 만든다. 그래서 김C가 만든 노래는 악보가 없다.

“음악은 기호나 숫자로 인식하는 순간 진짜 음악이 아니야. 음악은 가슴에서 나오는 거란다.”

고교시절까지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김C는 대학 진학에 실패하자 군대에 다녀온 뒤 방황하기 시작했다. 가수가 되고 싶어 고향 강원 춘천시에서 무작정 상경해 떠돌이 생활을 했다. 경기 고양시의 한 막걸리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근처에 살던 가수 강산에 씨를 만났다. 그의 연습실 보조로 기타를 잡은 게 김C가 로커로 내디딘 첫발이었다.

“가난 때문에 못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르가 바로 록이야.”

조용히 김C의 말을 듣고 있던 찬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찬규는 “형 얘기를 들으니 당장이라도 음악을 시작하고 싶지만 저희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있는 삼촌을 보면 빨리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그 말에 김C도 순간 말문이 막혔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얼마 뒤 그는 찬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펑크 정신 1조가 뭔지 아니?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야. 대충 마음대로 살라는 뜻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문제는 닥치면서 헤쳐 나가자는 거야. 너희가 당장 생업전선에 뛰어들 게 아니라면 일단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해봐. 그리고 너희가 꼭 돈을 벌어야만 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 생각해. 그래도 절대 늦지 않아.”

김C는 최근 발매한 앨범 두 장에 직접 사인을 해서 쌍둥이에게 건넸다.

“형 공연할 땐 언제든 연락하고 그냥 들어와. 너희들 음악 녹음한 테이프 같은거 있으면 보내주고. 그나저나 아직도 록을 하지 못할 이유가 남아 있나?”

찬규 영규 형제는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