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 오프]카탈루냐의 자존심 바르셀로나

  • 입력 2009년 5월 29일 02시 57분


바르셀로나 UEFA 챔스리그 우승바르셀로나의 사뮈엘 에토오(9번)와 사비 에르난데스(6번)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압하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른 뒤 대형 우승컵을 들고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로마=연합뉴스
바르셀로나 UEFA 챔스리그 우승
바르셀로나의 사뮈엘 에토오(9번)와 사비 에르난데스(6번)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압하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른 뒤 대형 우승컵을 들고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로마=연합뉴스
FC 바르셀로나(바르사)는 스페인 북동쪽 카탈루냐 지역의 자존심이다. ‘단순한 클럽 이상이 되자’는 구단의 모토에 걸맞게 팬들은 바르사와 함께 태어나 응원하고 무덤까지 간다. 바르사는 축구뿐만 아니라 인생과 문화를 판다. 하지만 바르사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오랜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다.

카탈루냐 주의 수도 바르셀로나는 중세부터 독립 성향이 강했다. 19세기 말에는 스페인 전역을 휩쓴 사회주의 및 무정부주의 운동의 중심이었다. 이렇다 보니 카스티야 주의 수도 마드리드가 기반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군사정권은 1939년 내전을 승리로 이끈 뒤 카탈루냐를 무차별 탄압했다. 카탈루냐를 기반으로 성장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은 권력을 장악해 횡포를 부리는 카스티야 지주층에 맞서다 보니 서로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이 과정에서 카탈루냐 주민 100만여 명이 학살당했다.

카탈루냐로서는 정권을 잡은 카스티야에 저항하는 유일한 수단이 바르사였다. 바르사 팬들은 프랑코에게 “살인자”라고 외칠 수 없으니 그라운드에서 카스티야의 레알 마드리드(레알) 선수들을 향해 야유를 퍼부으며 분노를 표출해 왔다. 이에 프랑코도 전폭적으로 레알을 지원했다. 바르사와 레알의 맞대결인 엘 클라시코가 빅 매치로 불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프랑코 압제가 끝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두 팀 간 원한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바르사는 역사를 되돌리듯 이달 3일 레알의 안방에서 6-2 대승을 거뒀다. 프랑코의 지원을 등에 업고 프리메라리가를 31회나 우승한 레알에 사상 최악의 패배를 안긴 것이다. 바르사는 올 시즌 프리메라리가와 국왕컵에 이어 챔피언스리그까지 거머쥐며 스페인 사상 첫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다.

바르사는 노란 바탕에 빨간 선 4개가 그려진 카탈루냐의 상징 문양 방패가 새겨진 유니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유니폼 광고를 자제해 왔다. 하지만 106년 전통을 깨고 2006년부터 불우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유엔아동기금(UNICEF) 로고를 가슴에 달고 뛴다. 오랜 압제 속에서도 지켜온 이런 자존심이 바르사를 최강으로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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