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미경]부부의 날… ‘웬수’의 손 잡아보자

  • 입력 2009년 5월 21일 02시 56분


계절의 여왕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신록과 함께 어린이날이 오고 초록이 조금 더 짙어지면 어버이날이 돌아온다. 꽃핀 나무 아래 풍선 들고 웃는 모습을 보면 봄날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아이들이구나 싶다. 선물을 안겨주고 놀이동산에서 쌓인 피곤이 가시기도 전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꽃다발도 안겨드려야 한다. 두 행사는 거국적이라 할 만하다. 방송과 기업의 마케팅 덕분에 본인의 기대도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대충 넘어갔다가는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이런저런 행사로 지갑도 텅비어버린 5월의 끝 무렵,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하나 더 놓아 주마 하듯 슬그머니 부부의 날(21일)이 다가온다. 대인관계가 협소한 탓인지 이날을 기념하는 닭살 커플을 목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지지고 볶으며 하나씩 깨달아

5월 한 달 동안 숨 가쁘게 다른 이름으로 찾아오는 이런 날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결혼 가족 자녀 부모. 이 한가운데 부부가 있다. 5월이 힘들다고 젊은 부부는 아우성이지만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5월의 풍경이 지나치게 고요하고 삭막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이 사라지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마흔 전후의 총각이 수두룩하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선 서른 이전의 자녀는 ‘배우자를 구하는 중보기도 리스트’에 올려주지도 않는다. 자연히 우리는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을 자랑하게 됐다.

이전 세대에게 인생의 필수과목이었던 결혼과 출산이 이제는 선택이다. 그것도 그다지 인기가 없는.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부부라는 말 대신 시민결합이라 부르자 한다. 부부라는 말이 주는 무게와 억압이 결혼을 두렵게 한다는 얘기다. 결혼이나 가족이란 진정 폐기해야 할 전근대적인 제도일까. 1년쯤 동거하다 결혼한 후배가 전화했다. 남편과 다툰 일을 털어놓으며 하소연이다. 언니, 괜히 결혼했나 봐, 그냥 그렇게 살걸, 그땐 사랑하고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우는 소리를 하기에 말해 주었다. 얘야, 결혼과 동거는 유전자가 다르단다. 내 은유가 너무 거칠어서 후배가 수긍했는지 모르겠다.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 키를 누르는 일에 익숙한 세대에게 동거란 매혹적인 제도처럼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일단 살아보고 잘 맞으면 결혼하겠다는 건 1시간짜리 여행 다큐를 보고 반해서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덜컥 사는 일과 닮았다. 결혼은 한 시간 만에 끝나는 다큐도, 귀국일자가 정해진 여행도 아니다. 결혼이란 어쩌면 졸업 따위 없는 어른의 학교가 아닐까. 완전히 다른, 그리고 불완전한 두 사람이 서로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지지고 볶는 용광로를 통과하면서 삶과 인간과 자신에 관해 새로운 성찰을 얻어낼 수 있는 학교 말이다.

이젠 “더 많이 져줄걸”하며 후회

나 역시 이 학교에서 많은 점을 배웠다. 결혼은 사랑의 무덤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어떤 사랑은 소멸되고 어떤 사랑은 새로 생겨난다. 가정이란 즐거움과 재미와 사랑만이 넘치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때론 전쟁의 날이었지만 그 결과 절벽과도 소통을 이루어내는 법을 배웠다. 최고가 될 때까지, 최후의 일인자로 남을 때까지 무한 배틀을 다그치는 세상 속에서 버텨나갈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게 됐다.

오늘, 부부의 날이라 한다. 고개 돌리면 보이는 ‘웬수’의 손을 ‘꼬옥’ 잡아 보라. 마음이 아릿한가. 하도 기가 세서, 젊은 날엔 가전제품에 손만 대면 오작동을 하던 내 룸메이트가 요즘은 슬픈 드라마를 보면 나보다 먼저 속옷 자락을 끌어당겨 눈가를 훔친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이 져줄 걸.

정미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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