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36>경제개발의 길목에서

  • 입력 2009년 5월 12일 02시 58분


1978년 1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신현확 보건사회부 장관(오른쪽). 신 장관은 같은 해 12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뒤를 이어 부총리로 취임해 경제 안정화를 위한 각종 대책을 추진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78년 1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신현확 보건사회부 장관(오른쪽). 신 장관은 같은 해 12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뒤를 이어 부총리로 취임해 경제 안정화를 위한 각종 대책을 추진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36> 안정화 시책과 투자 조정

재무악화 중화학 구조조정 불가피

옥포조선소 현장 둘러본 朴대통령

“조선공사는 그냥 놔두자” 지시도

1978년 12월 14일, 4년 3개월 만에 부총리 자리를 뜨게 됐다. 나의 후임자인 신현확 부총리는 수요 인플레이션을 다스리고 경제안정을 회복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업을 맡게 됐다. 그는 1979년 4월 17일 ‘경기안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여기에는 생필품의 수급 원활화 및 이를 위한 규제 완화, 재정-금융 긴축, 중화학 투자 조정, 부동산 투기 억제, 영세민 생활 안정대책 등이 망라됐다. 5월 25일에는 중화학 투자 조정계획을 발표해 발전설비 사업을 현대㈜와 대우㈜로 이원화했다. 디젤엔진 제작을 위한 신규 투자를 인정하지 않고 현대양행 중장비 엔진공장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기로 했다.

자기자본 부족과 단기 융자를 장기 투자에 투입한 데에서 온 재무구조의 악화 때문에 일부 기업이 문제가 되면 중화학공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는데 이는 나의 임기 중에도 가장 머리 아픈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당시 한국조선공사 남궁련 회장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옥포(경남 거제시)에 거대한 조선소를 건설하고 있었는데 재무구조 악화로 도저히 이 사업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경제장관회의에서 대책을 논의한 결과 한국조선공사와 옥포조선을 한데 묶어 대우에 넘기기로 결론이 났다.

지난 칼럼에서 1978년 여름 부동산 투기 방지 대책의 재가를 받기 위해 대통령 피서지인 저도에 갔던 일을 이야기했는데 그때 옥포조선소에 관한 안건도 함께 가지고 갔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 안건을 보고하자 대통령은 “여기서 가까우니 한번 가보지” 하고 비서들에게 출발 준비를 명하는 것이었다. 해군 함정을 타고 현지에 도착하자 거대한 건설 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원래 이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여러 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세워야 하는데 육지에 건설하자면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됐고 외국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어 하나의 해결책으로 해상에 거대한 부교(浮橋)를 만들어 그 위에 발전 시설을 올려놓는 기술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박사들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때 남궁 회장은 그런 부교를 만들 수 있는 선거(船渠·dock)의 폭이 넓은 조선소를 건설하겠다고 신청해왔고 정부는 그 점도 고려해 신청을 허가했던 것이다.

대통령은 묵묵히 현장을 바라보더니 “남궁 회장이 그동안 일을 많이 했군. 조선공사는 그냥 두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조선공사는 남궁 회장 손에 남게 됐는데 그가 별세한 후 결국 한진으로 넘어갔다. 박 대통령은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 후 1978년 12월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중동 산유국들이 연중 다섯 차례에 걸쳐 원유가격을 인상했고 그 결과 1979년 말 원유 수입가격은 전년도 말에 비해 2배나 상승했다. 이것은 물론 신 부총리의 안정화 시책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연율 20%의 물가상승이 계속됐고 7월에는 이란의 혁명으로 석유가격과 공급이 한층 불투명해지자 경제기획원(EPB)은 같은 달 ‘하반기 경제 운영대책’에서 석유 공급 확보와 소비 절약, 금융 긴축, 부동산 투기억제, 서민 감세 등의 시책을 공표했다.

신 부총리는 탁월한 행정가였다.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시해되는 비극이 발생한 직후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에 의해 국무총리로 임명돼 그 엄청난 위기에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조용히 물러났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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