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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9일 2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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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나누기가 이처럼 독도 되고 약도 된다면 처방과 사후관리가 중요하다. 해고대란은 피하면서 구조조정의 효과는 거두는 게 최선이다.
국내 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을 통해 거품을 뺐다. 평균 부채비율은 1997년 425%에서 2001년 196%로 대폭 낮아졌고 요즘은 105% 수준이다. 구조조정 방법론을 둘러싼 논란도 많았고 추진 과정에서 국민 전체가 고생했지만, 대기업을 건강 체질로 바꾸는 효과는 확실히 거뒀다. 만일 1990년대 우리 거품 경제가 그대로 이어졌다가 이번 글로벌 실물침체를 만났다면 경제 전체가 지금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았을 게 틀림없다.
이번 경기침체를 넘기려면 외환위기 때처럼 국민 경제적으로 큰 비용이 들 것이다. 어차피 고생을 할 수밖에 없다면 비용만큼 효과를 뽑아내는 게 최선이다. 우리 경제의 취약점으로 오랫동안 거론돼 온 노동경직성을 수술대에 올리는 게 좋은 방안이겠다.
작년 세계은행의 기업환경(Doing Business)지수로 한국은 181개국 중 23위였다. 그중 인력고용 부문은 152위다. 지수를 구성하는 10개 부문 중 가장 나쁜 성적이다. 비정규직보호법으로 고용경직성이 악화된 탓에 전년 122위에서 30계단 추락했다. 이것 말고도 우리 고용환경이 선진국 진입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국내외의 다른 평가도 수없이 많다.
노조, 경영진, 정부, 정치권 등 노동경직성 문제의 당사자들은 그동안 해결 의지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11년 전 해고 태풍을 겪은 뒤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자신들의 일자리 보호에만 골몰했다. 성장력이 갈수록 추락하는 ‘한국병(病)’도 깊어만 갔다. 해외투자 같은 중요한 경영 결정에서부터 공장 라인 변경에 이르기까지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현대자동차의 사례는 그중 심각한 경우다.
지금은 마이너스 일자리 시대다. 일자리 나누기에 따라 기업들이 우선 신입사원 초임을 깎자 일각에선 기존 직원과 신입 사원 간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청년실업자를 일부라도 고용하는 게 낫다.
초임 삭감은 ‘임금 유연성’을 높이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앞으로 기존 직원의 임금도 회사별로 생산성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조정될 여지가 있다. 근로시간 및 작업장 배치의 유연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해고수당도 낮아져 해고유연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기업마다 여건이 다르므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될 것이다.
이런 변화를 근로자들이 환영할 리가 없다. 소득이 떨어지고 해고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고용 부문의 거품이 종합 경쟁력을 떨어뜨려온 걸 인정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맞은 한국병 수술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를 독려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채용, 임금, 배치, 해고 등 인력고용의 전 과정이 유연하게 변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에게 변화의 유인을 제공하는 일도 정부 몫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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