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2월 5일 02시 4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법학에서는 이를 자신의 사생활과 관련한 진실된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일을 막을 수 있는가에 관련된 사생활정보의 자기결정권(informational privacy) 문제로 취급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 씨와 같이 익명으로 남고 싶어 하는 피의자를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피의자가 됨으로써 혼자만의 사생활이 아니고 공공의 영역에 들어오게 되었으므로 이를 언론이 보도하거나 수사기관이 그에 대해 언급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관점이 있다. 미국이 이를 대표한다. 반대로 피의자라도 인격의 일부인 정보에 대한 결정권은 존엄한 인간인 그 자신에게 있으므로 수사기관이 공개할 수 없고, 언론 또한 정보의 보도가치와 피의자의 사생활 보호를 비교해 일정한 책임을 진다는 견해가 있다. 독일이 이를 대표한다.
이 문제에 관해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은 다른 나라의 사례가 아닌 한국의 역사, 국민인식, 사회상황에 비춰 볼 때 피의자의 자기결정권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해야 하는가로 볼 수 있다.
형법이 공판청구 이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수사기관을 처벌하고, 공공장소에서는 사생활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미국과 달리 공공장소에서 적법한 목적으로 타인을 촬영하는 경우라도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위로 보는 한국 법원의 시각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무제한의 공개를 허용하는 미국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또 가족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는 우리의 인정(人情)으로 볼 때 이를 철저히 피의자 개인의 문제로 보는 서구 국가와 같지 않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피의자의 얼굴 공개는 범죄를 행한 피의자가 아직 도주 중인 경우 사회의 안전 확보, 얼굴을 알아본 사람에 의한 추가 범죄의 신고나 증거의 출현 가능성, 범죄수법에 비추어 비슷한 위험에 노출될 국민에 대한 교육 효과와 같은 공익이 분명히 있다. 또 특정 사건과 관련한 국민 일반의 관심이 수사가 진행되는 순간에 머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철저히 막아야 한다는 주장 또한 지나치게 형식적이다.
따라서 일정한 범위를 정해 피의자의 얼굴 공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기준은 사례식 해결보다는 법령을 통해 일반적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 언론이나 수사기관이 공개 여부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함부로 재단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어 적당하다. 이제 이 문제를 상기시켜 준 강호순 사건으로 돌아가 한 국민으로서 의견을 밝혀보기로 하겠다.
먼저 강호순은 사회에서의 교화와 사회복귀에 좀 더 비중이 두어지는 미성년자가 아니므로 상대적으로 그 사생활이나 신원을 보호할 필요가 작다. 두 번째로 강호순이 범했다는 범죄는 가장 폭력적인 살인죄이고 대상도 모두 여자이며 범죄 수법이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어 얼굴을 공개할 때 추가범죄나 새로운 증거에 관한 신고가 접수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로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 때 유사한 범죄의 재발가능성이 아주 높은데 강호순의 얼굴 공개는 이러한 형태의 범죄자를 보통사람이 아닌 험악한 얼굴의 상습범죄자로 생각하기 쉬운 다수의 국민에게 경각심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강호순은 이미 범죄에 대한 소명에 따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범죄와의 관련성에 대하여 최소한의 입증이 이루어진 상태로 단순히 의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도 다르다. 이러한 모든 점을 고려해 볼 때 나는 얼굴을 공개하는 데 찬성표를 던지고 싶다.
설민수 서울고법 행정2부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