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용우]생존전략도 노조에 OK받아야 하는 현대차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사업의 확장, 합병, 공장이전, 분리, 양도 등은 90일 전에 조합에 통보하고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심의 의결.’

‘국내 공장 생산물량 2003년 수준 유지. 국내 생산공장 노사공동위원회 심의 의결 없이 축소 및 폐쇄 금지.’

‘해외 공장 신설 및 차종 투입으로 인한 조합원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노사공동위원회의 심의 의결.’

현대자동차 단체협약 제41조와 제42조 일부다.

세계 자동차산업은 생존과 시장 재편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미국 자동차 ‘빅3’가 흔들리면서 판매 확대의 기회가 찾아온 미국 자동차시장에는 일본, 유럽, 중국 회사들의 공세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이번 격변기에 자동차 기업이 살아남는 데 필요한 핵심 요소로 ‘유연성’을 꼽고 있다. 누가 더 좋은 상품을 들고 좀 더 민첩하게 시장 변화에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세계 1위 자동차회사인 일본 도요타는 노사가 힘을 합쳐 발 빠르게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인력도 줄이고, 임금도 20% 삭감하기로 했다. 도요타를 비롯해 12개 일본 자동차회사가 이미 줄였거나 줄이겠다고 밝힌 인력은 2만300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는 인력 구조조정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근무시간을 늘려 달라며 19일 파업을 결의했다.

이런 상황을 놓고 현대·기아자동차에 대해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는 격”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21일 자동차공업협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비용과 거품 경제에서 만들어진 경직된 단체협약이 남아 있는 한 현대차도 이번 위기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해외 기업 인수합병, 해외 공장에서의 신규 차종 추가 생산 등 거의 모든 경영 의사 결정에 노조 동의가 필요할 정도로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앨라배마 현지 공장이 단적인 사례다. 최근 북미 시장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소형차종을 추가 생산하려 해도 한국 본사의 노조가 부정적 태도를 보여 지지부진한 상태다.

모래주머니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손발을 모두 묶고 눈까지 가린 상태로 싸워야 하는 셈이다.

현대차 노사는 “이런 노사 문화로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안팎의 비판을 이제는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조용우 산업부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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