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대]‘악성 전염병’ 백신개발 급하다

  • 입력 2008년 10월 31일 02시 58분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2003년에 콜레라가 발생했다. 과학자들이 균주를 분석한 결과 이 콜레라는 기존의 전염성이 강한 엘토르형의 특성을 보임과 동시에 이미 멸종됐다고 여긴 고전형 독성 유전자도 갖고 있었다. 이제까지보다 전염성이 크면서 독성이 강한 하이브리드형 콜레라가 등장한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모잠비크에서 발견된 것과는 다른 형태의 하이브리드형 콜레라균이 지난해 발견됐다. 그 밖에 방글라데시와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인도에서도 여러 가지 콜레라가 발병했는데 모두 하이브리드형으로 밝혀졌다.

콜레라뿐만 아니다. 항생제로 정복될 줄 알았던 결핵은 에이즈 확산과 인구 고령화에 따라 덩달아 폭증해 전 세계에서 매년 200만 명 정도 사망하고 있다. 모기가 옮기는 열대성 말라리아에는 매년 3억∼5억 명이 감염되고 100만 명 이상이 숨진다. 이 밖에도 뎅기열(熱), 디프테리아, 홍역, 장티푸스 등 잊혀진 과거의 전염병이 세계 각지에서 창궐하고 있다.

신종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의 위협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4월 전북 김제에서 처음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가 서울 한복판까지 확산되어 전 국민이 공포에 떨었다. 약 한 달 동안 도살 처분한 닭과 오리가 800여만 마리나 되고 투입된 직접 경비만도 1000억 원을 웃돈다. 올해 양상을 보면 AI 바이러스가 토착화할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이렇게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하는 전염병이 대두되면서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저개발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전염병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 또한 높아졌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 AI의 희생자 대부분은 개발도상국 주민이었다. 그런데 국경을 초월하여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활발한 세계화 시대에는 전염병이 저개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남아 여행의 증가로 해마다 열대성 말라리아에 감염되는 국민이 나온다. 황열, 이질, 콜레라에 감염된 채 입국하기도 한다.

다행인 점은 생명공학의 경이적 발전으로 바이러스나 세균의 분석 역량과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바이러스 분석, 단백결합, 유전자 재조합, 생명정보학 등 첨단 생명공학 기술이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에 널리 활용된다. 1925년부터 1990년까지 66년간 16개의 신종 백신이 개발됐는데 1991년부터 2006년까지 15년간 13개나 개발됐다. 시장 규모도 작년 38%, 올해 13% 커져 184억 달러에 이른다. 앞으로도 해마다 13% 이상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 있는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VI)도 백신 관련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달로 창립 11주년을 맞은 IVI는 그동안 3종의 백신과 경구용 백신의 효과를 향상시키는 면역보강제, 주사기 없이 혀 밑 점막을 통한 혁신적 접종법의 개발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최근에는 위험한 병원체를 다루기 위한 생물안전밀폐등급 3+(BSL3+) 실험실이 설치돼 결핵과 AI 백신 개발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이 첨단 시설을 포함한 모든 연구 활동과 성과는 교육과학기술부를 비롯한 우리 정부와 스웨덴 등 몇몇 국가,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 자선단체, 기업, 개인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굳이 인류애를 들지 않더라도 저개발국의 보건위생을 개선해야 자국 국민의 안전도 확보된다는 위기의식에서라도 백신 등 기초 생명과학 투자에 대한 인식 확대가 필요하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보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는 계속 확대돼야 한다.

박상대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부회장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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