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송진흡]한국車 발표회서 한국대사 봤으면…

  • 입력 2008년 10월 24일 02시 56분


21일 오후 1시경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크라이슬러 용산 전시장. 미국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가 한국 시장에 새로 선보이는 ‘세브링 터보 디젤’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한 신차(新車) 발표회에 ‘뜻밖의 손님’이 나타났다. 최근 한국에 부임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였다.

스티븐스 대사는 발표회장에 들어와 마이크를 잡자마자 유창한 한국어로 세브링 터보 디젤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차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고효율의 차입니다. 그리고 보니까 아주 멋있어요.”

다음 날 오전 11시경 서울 서대문구 합동 주한 프랑스대사관.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정원(庭園)에서 프랑스 정부와 무관한 행사가 하나 열렸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푸조가 한국 시장에 새로 내놓은 ‘308SW HDi’와 ‘308 HDi’ 발표회였다. 이 자리에서 필리프 티에보 주한 프랑스대사는 “대사관에서 푸조 신차 발표회를 갖게 돼 기쁘다”며 “프랑스 자동차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같은 날 민주당 신낙균 의원은 국정감사 자료 1건을 언론에 공개했다. 외교통상부에서 입수한 ‘2008 재외공관 관용차 구입 및 교체 현황’ 자료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해외에 있는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공관장용으로 산 차량 20대 중 16대(80%)가 외제차였다. 특히 이 가운데 14대는 고가(高價) 차량으로 정평이 나 있는 독일제 벤츠였다.

흔히 자동차를 ‘움직이는 광고판’이라고 부른다. 브랜드 로고를 붙인 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 자연스럽게 회사 홍보가 되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을 갖춘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라는 점을 해외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켜 은연중에 국가 이미지를 높여준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에 주재하는 미국 및 프랑스대사가 자기 나라 자동차 회사가 주최하는 신차 발표회에 앞 다퉈 찾아가 ‘세일즈’에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교관이 외국차를 타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 각국 정부가 자국(自國) 기업과 제품의 경쟁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외교관, 특히 공관장이라면 스티븐스 대사나 티에보 대사의 자세에서 눈여겨볼 점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한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똑같이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외교관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송진흡 산업부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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