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원목]한미FTA 국회비준 ‘협상카드’ 활용을

  • 입력 2008년 10월 4일 03시 00분


한미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조만간 마무리해야 하는 것은 역사적 사명이다. 문제는 어떤 단계를 거쳐 상호 비준에 이르느냐는 점이다. 여당이 압도적 다수당인 우리 국회가 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는 일은 결국 낙관적이기에 미국의 비준 여부와 시기에 관심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FTA 비준동의안은 미국법상의 신속처리절차(Fast Track)의 적용을 받으므로 일단 의회에 제출되면 문안을 수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미 타결된 협상이라도 재협상을 하여 새로운 문안을 확정한 이후 의회에 제출하는 것은 미국 국내법상 가능하기에 그동안 미국 내에서 재협상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차기 미 행정부와 의회가 우리로부터 추가적인 양보를 받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이런 노력이 일정한 성과를 거둬야 하원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기로 합의하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은 상당히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비롯한 몇몇 사례가 있고 미국 내 경기침체와 자동차산업의 몰락이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공화당 정부가 자동차 교역의 불균형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여론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의 핵심에는 화물자동차(트럭) 부문의 협상결과에 대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정부가 한국산 트럭에 대해 현재 부과하는 25% 관세를 10년에 걸쳐 철폐하기로 양보한 결과 미국 자동차산업의 피해를 가중시키게 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한미 FTA에서 자동차 교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이 자동차 세제를 개편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미국이 관세 철폐를 중지하고 원래 관세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합의했는데 적용 범위에 트럭 부문이 빠져 있다는 점도 불만이다. 더구나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는 공화당 정부의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어 미국이 금년 내에 FTA를 비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우리 정부와 여당 수뇌부는 금년 내에 비준절차를 완료하려 하고 있다. 그래야 FTA 재협상은 없다는 준엄한 메시지를 전달함은 물론 비준게임의 공을 상대방 코트에 넘길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경제침체와 금융위기를 동시에 겪는 미국인에게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닥칠 자동차산업의 몰락과 노동집약적 산업의 일자리 감소 앞에서 장기적인 FTA의 이익은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기 비준해 버리면 나중에 추가적 타협 없이는 미국의 비준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어느 경우라도 트럭에 대한 관세 철폐 합의를 재조정하는 방안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다. 핵심사항을 재협상하는 일이고 양허표의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문 외에도 의약품 분야의 쟁점사항인 특허·허가연계제도 도입에 우리가 18개월 동안 유예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 우리가 양보하여 조기 도입을 약속하는 서한을 추가로 교환할 수 있다. 우리가 비준을 완료한 상태라면 추가 협상 자체의 진행이 불가능해진다. FTA가 사멸할 위기에 처하게 되면 추가 협상을 벌이는 방안이 유일한 돌파구인데 우리의 조기 비준이 추가 협상의 여지를 없애버리게 된다.

물론 추가 협상을 통해 양보를 한다는 사실 자체에 국내에서 촛불시위가 재발할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의 비준 가능성은 낙관적이기에 세계 최강국의 의회를 상대로 역사적 과업을 쟁취해내기 위한 최후의 양보 카드를 암암리에 남겨 놓는 방안이 중요하다. 이런 카드를 쓰지 않고 상호 비준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