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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25일 02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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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가계는 대부분 중소기업 근로자, 영세 자영업자, 운수업 종사자로 구성된다. 이들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 기초적인 생산과 소비를 담당하는 ‘실뿌리 계층’이다. 서민 가계 소득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뿌리가 마르면 나무 전체가 시들해지듯 서민 경제의 부실화는 전체 경제의 활력을 잃게 한다. 소비 둔화라는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갈등이라는 정치사회적 불안정도 심화시키는 까닭이다. 서민 경제가 취약해질수록 내수 기반이 허약해져서 외부 충격에 대한 내성도 그만큼 약해진다.
결국 대외 여건 악화가 국내 실물 경제로 전이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는 서민 경제 활성화를 뒷전으로 밀어두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서민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한국 경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 성장률에 비해 고용률이 크게 낮다.
가계소득 늘려야 경제체질 튼튼
앞으로도 해외 의존도가 높은 자본과 기술집약적 대규모 장치 산업이나 의료와 법률 등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지식 서비스업만 발전하면 경제성장률은 높아질지 모르나 서민 고용에는 별 보탬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서민의 손재주와 정감이 요구되는 주물·금형과 같은 부품 소재 산업과 보육·간병과 같은 다양한 사회 서비스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사실 서민 고용에 건설업만 한 것이 없다. 계획된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가능한 한 앞당길 필요가 있다.
서민 금융 시스템을 강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서민 가계의 부채 증가율이 자산보다 훨씬 높고 전체 가계 평균보다도 속도가 빠르다. 그동안 중소기업 대출 역시 크게 늘어났다. 서민 부문이 가장 큰 부채 부담 속에 사는 셈이다. 국내외 금융 경색 현상이 깊어지면 서민 가계와 중소기업의 줄파산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은행권의 서민 금융을 확대하고 소액금융제도와 같은 대안 금융을 활성화하여 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저소득 가계의 부채를 일시에 탕감하거나 유예해주는 특단의 대책도 서민 가계의 안정을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방안이다.
서민 계층이 직면한 빈곤의 악화를 막고 서민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는 삶의 질을 개선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주거, 광열수도, 보건의료, 교양오락, 교통통신 등 5개 부문을 대상으로 삶의 질 지수를 측정해 본 결과 서민 생활의 질적 수준이 가장 나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치매 등 각종 만성질환과 주거 불안정은 서민 가계의 고통을 더해주는 핵심 요인이다. 서민 질병을 전담하는 의료기관과 노인 요양시설을 확충하고 서민 주택 공급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할 연유가 여기에 있다.
서민영재 지원, 가난 대물림 막길
좀 더 근본적으로는 가난의 대물림을 막아야 한다. 서민의 교육 지출 증가율은 평균보다 크게 낮고 상위 소득 계층의 교육비에 대한 비율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교육 지출의 양극화는 결국 교육 수준의 격차로 이어진다. 서민 자녀는 가난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서민의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은 각급 학교에 서민 자녀의 적성과 특성을 고려한 ‘전문적 진학 상담 체제’를 확립하는 한편 서민 영재를 발굴하여 집중 지원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자신의 경력과 능력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평생 학습 프로그램’을 주요 대학마다 개설하여 서민층의 취업 능력과 기회를 확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경제의 어원인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뜻을 풀어보면 서민 경제를 살리는 일이 경제 운영의 기본임을 알 수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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