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태훈]미국의 힘 보여준 주식시장

  • 입력 2008년 9월 9일 02시 56분


“저거 봐. 저기도 상한가 쳤네.”

8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회사 객장에 나온 개인투자자들은 주가 급등이 믿기지 않는 듯 전광판을 가리키며 연방 탄성을 질렀다. 이 지점의 주식 전광판은 하루 종일 온통 붉은 숫자로 채워져 있었다.

이날 주식시장은 오전 9시 개장과 동시에 ‘사자’ 열기로 달아올랐다.

코스피는 33.21포인트(2.36%) 치솟은 1,437.59로 개장했다. 줄곧 ‘팔자’ 행진을 이어온 외국인도 이날은 개장 후 1시간 만에 670억 원어치를 순매수(매입액에서 매도액을 뺀 것)하면서 상승 장세에 가세했다.

오전 10시를 넘기면서 코스피 상승 폭이 60포인트를 뛰어넘자 “증시가 본격적인 반등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반응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서 나오기 시작했다. “돌발변수가 없으면 코스피가 1,700 선 중반대까지는 무난히 상승할 것”이라는 목표주가 상향조정도 잇따랐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주가 지지선이 어디인지를 말하는 게 무의미하다”며 답변을 회피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날 코스피가 올해 들어 최대 상승 폭, 사상 세 번째의 상승 폭을 기록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밤사이 날아온 미국발(發) 호재(好材) 덕분이었다. 미국 정부가 그동안 세계 금융시장의 최대 불안 요인이던 양대 모기지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한국뿐 아니라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아시아 각국 증시도 동반 상승했다. 오후 유럽 증시도 일제히 상승세로 개장했다.

이날은 우리 경제에 미치는 ‘미국의 힘’을 극적으로 보여준 하루였다. 이른바 ‘9월 위기설’로 온 나라가 시끄럽던 지난주 한국의 경제상황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문제가 없다”는 당국의 해명에도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어떤 설득력 있는 설명보다도, 미국 정부에서 내놓은 메가톤급 발표 하나가 시장의 분위기를 금세 돌려놓은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하던 이날의 경험은 외부와 실시간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상황이 우리의 생존여건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그렇다고 너무 슬퍼할 것도 없다. 한국뿐 아니라 우리가 따라가려는 선진 각국의 증시도 모두 그랬으니까.

이태훈 경제부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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