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승호]資源의 저주

  • 입력 2008년 8월 15일 02시 56분


네덜란드는 1950년대 말 흐로닝언 주 앞 북해에서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를 발견했다. 주변국들은 이미 선진국이었던 네덜란드가 가스 덕분에 ‘유럽의 낙원’이 될 것으로 생각하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결과는 경제의 장기 침체였다.

경로는 이렇다. 천연가스를 수출하자 매년 수십억 달러가 네덜란드로 굴러들어왔다. 네덜란드 길더화 가치가 올라갔다. 그 덕분에 해외에서 생산된 물품이나 서비스가 싼값에 들어온 반면 수출업자는 판로를 잃었다. 가스 외의 모든 산업이 가격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일본이 네덜란드 상인들이 싣고 온 조총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데서 보듯 네덜란드는 수백 년간 교역으로 살아왔다.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는다. 이런 나라가 수출경쟁력을 잃었으니….

게다가 당시 네덜란드 정부는 가스 수출에 따른 재정흑자를 비생산적인 부문, 특히 사회보장 등의 재분배에 썼다. 그 결과 임금이 올라갔고 물가도 함께 올랐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경제학자들은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고 작명했다. 멋진 표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원의 저주’라고 불렀다.

민주적 정치체제를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는 천연자원이 ‘병’을 넘어 아예 ‘재앙’이 되곤 한다. 예를 들어 앙골라는 정부군과 반군 모두 풍부한 다이아몬드를 판 돈으로 무장하며, 그 군사력으로 다시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벌인다. 국민의 생명이나 인권은 뒷전이다. ‘피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이유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자원부족국의 내전 위험은 0.5%인 반면 자원만으로 먹고사는 나라는 23%라고 한다. 중동 산유국들도 일부 계층에 의한 부(富)의 독식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색스와 앤드루 워너는 긴 연구 끝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 대개 아주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다.”

물론 자원이 꼭 저주인 것만은 아니다. 노르웨이도 1970년대 북해 원유 개발로 네덜란드와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네덜란드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노르웨이는 대규모 석유기금을 만들어 달러 유입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완충했고 수익금을 쓸 때도 교육과 연구개발, 보건위생, 사회간접자본 등 생산적 부문에 지출했다. 세상만사 사람 하기 나름인 것.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의 경제는 국제 유가에 일희일비한다.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자 물가가 치솟고 경상수지 적자가 쌓였다. 경기도 바닥. 최근 유가가 떨어지자 조금 숨통이 트이는가 싶지만 석유 대신 달러 값이 오르면서 또 다른 경로의 물가상승과 자본시장 교란 가능성이 나온다.

이런 때면 유산(遺産) 많은 친구를 부러워하듯 ‘우리도 석유가 있다면 이런 고통 안 겪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너무 기죽을 일 아니다. 윌리엄 번스타인은 저서 ‘부의 탄생’에서 부를 만드는 요소로 △재산권과 법치주의 △과학적 합리주의 △활성화된 자본시장 △수송통신의 발달 등을 꼽았다. 천연자원은 거론조차 안 됐다.

자원은 유한하다. 언젠가는 고갈된다. 그렇지만 교육과 기술력, 좋은 인적 자산을 바탕으로 구축한 높은 생산성은 쉬 소멸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시라. 한국인들의 특기가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은가.

허승호 경제부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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