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민주당 비겁하다

  • 입력 2008년 6월 29일 21시 02분


요즘 통합민주당의 말과 행동을 보면 이들이 과연 ‘민주’라는 당명(黨名)을 쓸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시위대가 밤마다 서울 도심을 마비시킨 지가 두 달 가까이 되는데도 꿀 먹은 벙어리다. 일부 시위대가 폭도로 돌변해 전경을 짓밟고, 기자와 시민을 폭행하고, 언론사 시설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등 민주주의와 법치를 유린하는데도 못 본 체하고 있다.

오히려 한 술 더 뜬다. 불법 폭력 시위를 ‘국민의 정당한 저항’이라고 치켜세우고, 정부의 공권력 행사는 ‘폭력’이라고 낙인찍는다. “경찰이 폭력시위를 유도해 공안정국으로 몰아가려한다”고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일부 국회의원은 ‘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의 맨 앞에 선다. 시위대와 어울려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권과 그 정권이 구성한 합법정부를 부정하려는 의도 아닌가.

국회를 내팽개친 지도 벌써 한 달째다. 자신들이 여당이자 다수당일 때는 국회법과 권한을 들먹이며 BBK특검처럼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힘으로 밀어붙이더니 처지가 달라지자 법까지 위반하며 떼쓰기와 장외투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총선 민의와 그 민의를 바탕으로 구성된 18대 국회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민주당 지도부는 정부의 쇠고기 고시를 ‘제2의 국치(國恥)’로까지 표현했다. 정말 그렇게 엄청난 일로 여긴다면 자신들이 다수당일 때 ‘불안전한’ 쇠고기가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해 미리 국치를 막지 않고 뭐했나. 쇠고기협상이 타결된 4월 18일 이후 17대 국회 임기가 끝난 5월 29일까지도 기회는 있었다. 그때도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가축법 개정을 요구하며 국민청원 서명운동까지 벌이는 심보가 뭔가.

사회적 갈등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추스르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이 할 역할이다. 국민을 상대로 올바른 정치교육을 하는 것도 정당의 책무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국민에게 ‘나쁜 정치’를 학습시키고 있다. 다수 국민이 변질된 촛불시위에 반대하고 국회 정상화를 바라는데도 거꾸로만 가고 있는 민주당이 과연 민의를 존중하는 정당인가.

민주당은 지난 10년간 정권을 잡아 실제 나라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 국무총리, 장관, 도지사, 시장으로서 국정을 집행하거나 여당의 중책을 맡아 뒷전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사람도 적지 않다. 국가 경영이 어떤 것인지, 여당과 야당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쯤은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옛날의 야당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그동안 배운 것이 없는지, 아니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인지 모를 일이다.

민주당 집권 시절에도 대형 불법 폭력시위가 적지 않았다. 노동계와 운동권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제2의 국치’라며 노무현 정권 퇴진까지 외쳤다. 민주당은 그때를 되돌아보길 바란다. 그런 시위를 정당하다고 했고, 공권력 행사를 폭력이라고 했는가. 의원들이 시위대 앞줄에 서고, 법질서 회복을 강조하는 정부를 향해 “공안정국을 조장한다”고 비난했는가.

민주당은 지금 공권력과 폭력,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또 여당일 때와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인다. 미래를 바라보기보다는 촛불시위에 편승해 당장의 정치적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비겁한 행동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