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광영]다리 잃은 비보이의 ‘삶에 대한 열정’

  • 입력 2008년 6월 24일 03시 01분


“최고의 비보이팀에서 촉망받던 친구라 더욱 마음이 급했을 겁니다. 무대 위 멤버를 바라만 봐야 하는 외로움, 음악이 들려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절망감이 이해가 돼요.”

원조 비보이로 명성을 떨치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뒤 ‘비보이 배틀 MC’로 재기한 ‘MC고’ 우정훈 씨(본보 6월 17일자 A24면 참조)는 후배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듣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국내 최정상 비보이 그룹 라스트포원의 주니어팀에서 활동했던 양모(23) 씨는 지난해 말 공연 도중 무릎 인대가 파열되면서 팀에서 나온 뒤 결국 자살을 택했다.

“대회 MC를 보면서 그 친구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것을 눈여겨봤어요. 곧 빛을 보겠구나 생각했는데….”

우 씨는 후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5년 전 사고를 떠올렸다.

그는 2003년 첫 번째 교통사고로 척추 날개 뼈가 부러지고 왼쪽 얼굴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춤을 출 때마다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처음 겪는 좌절이었다.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었다. 쓰러지는 느낌을 응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1년 만에 본궤도에 올랐고 2006년 모든 장르의 댄서들이 경쟁하는 ‘크라우드’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지난해 당한 두 번째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을 때는 그도 자살을 시도했다. 춤을 못 추는 고통은 둘째 치고 장애인이라는 처참한 ‘일상의 벽’ 앞에서 길을 잃었다.

“하루는 백화점 화장실에 갔어요. 장애인용 칸이 있긴 했지만 문이 안쪽으로 열리더군요. 휠체어가 들어가고 나니 문이 닫히지 않아 호스로 소변을 뽑아냈죠. 아이들이 몰려들어 신기한 듯 쳐다보는데 어떤 부모도 말리지 않더군요.”

그날 우 씨는 절망감과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재활치료용 철봉에 목을 매달려 했다.

절망의 늪에서 그를 끌어낸 건 ’긍정의 눈’이었다.

‘춤을 잃었지만 춤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라고, 다리를 잃었지만 말솜씨는 그대로라고, 앉은뱅이라고 무시당해도 나 없이 못산다는 아내가 있다’는 생각에 그는 목을 감은 밧줄을 풀었다.

사고 후 일년 반. 이제 그는 말한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길 수는 없지만 비켜갈 수는 있어요. 잃어버린 것만큼 남아 있는 것도 꽤 많거든요.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이다 보면 무한한 장애물 대신 일말의 가능성이 먼저 보입니다.”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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