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광표]미술은 컬렉션으로 완성된다

  • 입력 2008년 6월 17일 03시 04분


시인인 사천 이병연(1671∼1751)은 18세기 대표적 컬렉터의 한 명이다. 그는 연배인 화가 겸재 정선(1676∼1759)과 자주 어울렸다. 이병연은 금강산 등 팔도의 명승을 돌면서 시를 짓고 정선에게 그 시에 맞춰 그림을 그려달라고 청하곤 했다. 선비 문인들의 아회(雅會·글 짓는 모임)에 정선을 초청해 선비들에게 소개하고 아회의 멋진 풍경을 화폭에 옮기도록 했다. 이병연은 또 정선의 작품을 직접 구입하기도 했으며 그 작품을 주변의 선비나 미술 애호가들에게 보여줘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18세기 전반, 정선의 산수화가 많은 고객을 확보하면서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것도 실은 이병연의 도움이 컸다. 250여 년 전, 조선의 컬렉터 이병연은 단순한 작품 수집에 그치지 않고 화가의 진정한 후원자가 되어 당대의 미술 부흥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지난주 서울의 K옥션 경매에서 반 고흐의 ‘누운 소’가 예상가를 뛰어넘는 29억5000만 원에 낙찰돼 세간의 화제다. 고흐의 초기작이어서 그의 대표작으로 보기 어려웠지만 고흐라는 이름값을 한 것이다. 여기엔 미술 시장에 대한 기대 심리가 담겨 있기도 하다. 2006년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지난해 말 거품이 빠지면서 움츠러들었던 미술 시장이 최근 들어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은 개선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일부 근현대 인기 작가와 중국 작가 중심으로 돈과 관심이 지나치게 쏠리다 보니 시장의 불균형이 심각한 편이다. 그래서 묻지마 투자가 생기고 거품이 낀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젊은 작가 쪽으로 컬렉터들의 돈이 이동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돈만 옮겨가서는 곤란하다. 외롭게 예술의 길을 걷는 젊은 미술가들이 예술적 성취를 이뤄낼 수 있도록 후원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고미술이 지나치게 냉대를 받고 있는 점도 고쳐져야 한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경매 시장의 주역은 고미술이었다. 박수근 작품이 4억 원대였던 2001년, 겸재 정선의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가 7억 원에 낙찰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랬던 고미술의 거래가 2006년 하반기부터 차갑게 얼어붙었다. 올해 들어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메이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 K옥션의 올해 상반기 경매를 보면 고미술의 비중은 여전히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미술 경매 시장은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 신진 작가와 중견 원로 작가, 한국 미술과 해외 미술, 고미술과 근현대 미술이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만 미술 시장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매 등을 통한 미술 컬렉션은 단순히 작품을 수집하고 그걸 되팔아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다. 컬렉션은 그 자체로 미술 행위다. 균형 있고 건강한 수집 행위를 통해 시장과 예술의 공존을 도모하는 컬렉션이어야 한다. “미술은 컬렉션을 통해 완성된다”는 말처럼 컬렉터들은 미술의 진정한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정선은 1751년 병중(病中)의 이병연이 완쾌되길 기원하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216호)를 그렸다. 자신을 후원해 준 이병연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으니, 컬렉터 이병연이 없었다면 이 불후의 명작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광표 문화부 차장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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