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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2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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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광우병의 본고장이지만 실제로 광우병을 걱정하면서 고기를 먹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광우병이 발생할 수 있는 기준으로 알려진 30개월보다 훨씬 나이 많은 소도 먹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말까지 국가별 광우병 발생건수는 영국에서 모두 18만3823건, 아일랜드 1353건, 프랑스 900건 이상, 포르투갈 875건, 스위스 453건, 스페인 412건, 독일 312건인 것으로 집계했다. 일본도 26건이 발생했다. 모두 미국의 광우병 발생건수인 3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간 광우병에 걸려 죽은 사람도 영국 163명, 프랑스 11명, 아일랜드 4명 등인 데 비해 미국에서는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한국의 광우병 파동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통계를 잘 알면서도 별 걱정 없이 거의 매일 고기를 먹는 유럽인이 강심장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기자 역시 강심장이다. 아이들이 프랑스 학교에서 매일 점심 급식으로 고기를 먹는 것을 방치하고 있으니까.
유럽과 미국이 광우병 발생빈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료 때문이다. 본래 소는 풀을 먹고 자라는 동물이다. 그러나 소 사육이 대형화하면서 단백질 성분을 보충할 가공 사료가 필요해졌다. 세계적으로 이런 사료는 대두(大豆·Soya Bean)에서 얻었다. 그러나 유럽 지역에선 대두가 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유럽의 소 사육업자들은 값이 더 싼 사료를 얻기 위해 동물성 부산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료가 1987년 이전까지 유럽에 널리 퍼졌고 나중에 광우병의 원인이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유럽과 달리 대두가 잘 자랐고 대두 사료의 값이 저렴했다. 그 결과 동물성 사료를 유럽처럼 널리 사용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유럽과 미국의 광우병 발생빈도에서 큰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다. 소가 주로 뭘먹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호주나 뉴질랜드가 광우병의 청정지역인 것도 이들 나라에서는 소에게 사료를 거의 주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방목하기 때문이다.
한미 간의 쇠고기 협상을 비판하는 것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비판 없이는 발전도 없다. 그러나 삼가야 할 것은 선동이다. 특히 지상파를 과점하고 있는 방송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미국의 광우병 예방 조치에 대해 한국 밖에서도 여러 비판이 있다. 미국이 유럽과 달리 동물성 사료를 아직 부분적으로만 금지한다는 점, 책임관청인 식품의약국(FDA)의 감독이 소홀하다는 점, 광우병 증상에 대한 보고가 철저하지 않다는 점 등은 미국이 로비스트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지 의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비판이 선동으로 넘어가는 것은 그것이 주제의 큰 틀을 보여 주지 않고 세부에 집착할 때다. 미국산 쇠고기를 비판하기에 앞서 미국과 유럽의 광우병 발생빈도에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 광우병 발생의 원인인 동물성 사료가 미국에서는 유럽에서처럼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 오늘날 유럽인이나 미국인이 큰 걱정 없이 자기 나라 쇠고기를 먹고 있다는 점이 먼저 강조됐어야 한다. 그런 토대에서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생산적인 비판과 합리적인 개선이 가능하지 않을까.
송평인 파리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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