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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1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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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가격의 변동이 소비와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부의 효과(wealth effects)라고 불러왔다. 자산가격이 상승하면 부가 커진 것으로 인식한 소비자들은 종전보다 소비를 늘리게 되고, 반대로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부가 줄어든 것으로 인식해서 소비를 줄인다는 것이다. 자산경제는 이러한 부의 효과가 경제성장의 주요 결정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제라고 할 수 있다.
부의 효과를 중시하는 자산경제는 전통적인 경제학의 관점과 어긋난다. 기존의 경제학자들은 부의 효과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아왔다. 부자들은 소비성향이 낮다는 인식 때문이다. 본래 큰 부자는 부의 크기가 늘었다고 해서 소비를 비례해서 늘리지 않는다. 본래 쓸 만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소비를 늘릴 여지가 크지 않다.
고소득층 씀씀이 변화 적어
현대 자본주의가 자산경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징조는 2000년 초에 있었던 닷컴 버블의 붕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채택한 금리인하 정책 이후 미국 경제에 나타난 일련의 거시경제 흐름에서 감지된다.
본래 주가 폭락에 대한 대책으로의 금리인하는 시장의 분위기를 안정시킴으로써 경기 침체를 방지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방어적인 것이다. 주가 폭락이 1930년대의 대공황과 같은 최악의 국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닷컴 버블 붕괴 이후 미국의 저금리 정책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저금리 정책은 주택가격의 상승과 소비 증가를 유발하면서 미국 경제를 매우 강한 호황국면으로 이끌었다. 경기 침체를 막는 정도의 효과를 기대했던 금리인하가 경기 팽창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21세기 자산경제가 어떤 구조를 가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금리가 하락하자 주택건설이 활발해지고 주택금융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주택금융의 완화로 차입에 의한 주택 수요가 커지면서 주택가격은 더욱 상승했다. 주택가격의 상승이 지속되자 상환능력이 부족한 중하위 소득계층도 차입금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가격은 더욱 상승했다. 주택가격 거품론이 제기되었지만 시장의 관성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전형적인 투기장세가 벌어졌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과거에 보기 어려웠던 현상이 벌어졌다. 주택가격의 상승분을 담보로 차입해서 소비를 하는 패턴이 중산층과 그 이하의 소득계층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이들 계층에서 외식이 늘고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새로 사는 가구가 늘었다. 예상치 못했던 이런 소비가 미국 경제를 예상외의 호황국면으로 이끌었다.
결국 21세기 자산경제는 자산가 계층이 아니라 중산층 이하의 소득계층에서 소비자금융을 매개로 부의 효과가 커지는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자산가격의 변동으로 부의 크기가 변하면 중산층 이하의 소득계층이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금으로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변화하고 경제성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경제 사회 불안정성 증가
이러한 자산경제의 등장은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불안 요인을 내포한다. 우선 경제의 변동성이 심화된다. 자산가격은 본래 불안정성이 크다. 이런 자산가격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는 것은 경제 전체적으로 불안정성이 증가함을 의미한다. 경제의 금리 민감도도 증가한다. 금리가 기업의 투자는 물론이고 소비에도 부의 효과와 금융비용 부담을 통해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불안정성도 증가한다. 중하위 소득계층 사람들이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금으로 소비를 하는 행태는 자산가격이 하락할 때마다 파산자가 양산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확대될 위험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거시경제 정책이 한층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상묵 삼성생명 상무·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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