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걸릴 정도로 추운 여름 사무실
내가 에너지절약운동단체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으로부터 간곡한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그는 여름철만 되면 버스 안이 너무 추워 고통스러우니 공공장소에서의 지나친 냉방문제를 에너지시민연대에서 꼭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항상 여분의 스웨터를 들고 다니는데, 깜박 잊고 나온 날이면 버스에서 도중에 내리고 싶을 때가 많다는 하소연을 덧붙였다.
여름철이면 감기를 달고 사는 친구도 있다. 건물 전체가 유리창으로 덮인 초현대식 빌딩에서 온종일 펑펑 틀어대는 에어컨 바람을 쐬며 생활하는 직장인이다. 사무실에 늘 스웨터를 준비해 두지만 감기 기운은 떨어질 줄 모르고 그런 엄마 때문인지 어린 아들도 콧물 기침이 그칠 날 없다고 걱정했다.
에너지시민연대에서 지난해 7월 12일, 서울시내 중심가 공공장소 71곳의 실내 냉방온도를 조사했더니, 여름철 실내 적정온도(섭씨 26∼28도)를 준수하는 곳은 21곳으로 30%에도 못 미쳤고, 나머지 70% 이상(50곳)은 평균 온도가 섭씨 23.7도였다. 그중 대형마트와 백화점, 패스트푸드점이 가장 낮아서 22.6∼22.9도를 기록했고, 시내버스 10개사의 평균 온도는 23.6도였다. 바깥온도와는 7도 이상 차이가 났다.
도시의 많은 직장인이 냉방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우리 단체에서 적정 냉방온도 지키기 캠페인을 펼치자 사무실로 600통 이상의 과잉냉방 관련 고발성 전화가 걸려온 것만 봐도, 올여름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더위가 아닌 추위(?) 걱정이 앞서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에어컨 한 대를 켜면, 선풍기 서른 대를 켜는 것과 맞먹는 에너지가 소비된다. 여름철 에어컨을 가동하기 위해 다른 계절보다 원자력 12기가 더 가동돼야 하는데, 거기에 여분의 발전기를 한두 대 더 돌려야 하는 우리나라 피크 전력의 주범도 7∼8월의 에어컨사용이다. 여름철 정전사태의 원인이 되고, 가정 전력요금이 누진제에 적용되어 폭등하는 경우도 대부분 에어컨 사용 때문이다.
석유를 근간으로 한 화석에너지의 남용과 이로 인한 온실가스배출량 증가로 온난화가 가속화돼 지구촌 곳곳에 재앙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변해 가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올여름도 폭염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그만큼 에어컨 사용량도 늘어갈 것이다. 도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켜지 않을 수 없다면, 섭씨 26도 여름철 실내 적정온도에 맞추자. 우리 국민 모두 에어컨 온도 1도만 높여도 1년에 84만 kW의 전력을 절약한다. 돈으로는 270억 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재앙 닥치기 전에 아껴쓰자
올해도 여전히 스웨터를 입고 찬바람에 떠는 여름철, 반소매를 입고 아파트 창문을 열어두는 겨울철을 보내서는 안 된다. 나와 가족, 동료의 건강을 위해서도 지나친 냉난방은 자제해야 할 일이다.
초고유가 에너지 위기 시대에 한국은 에너지소비 세계 10위, 온실가스 배출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기름 한 방울이 아쉬워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하면서도 말이다. 하루 종일 꽂아놓은 전기코드, 음식물을 꽉꽉 채워 넣은 냉장고, 나홀로 차량, 빈번한 급제동과 급출발, 무분별한 1회용품 사용, 빈 사무실에 켜진 전등 등은 에너지 낭비의 주범이다.
이기명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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