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제3연평해전’의 유혹

  • 입력 2008년 4월 10일 02시 59분


백령도는 남한의 최북단 섬이다. 심청이 앞 못 보는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300석에 팔려가다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도 인근에 있다. 바로 눈앞 황해도 장산곶에서 고기잡이하는 북한 어선들도 훤히 보인다. 평소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지구상에서 군사적 긴장이 가장 높은 ‘화약고’ 중 한 곳이다. 우리 해병여단이 주둔하고 있는 이 섬은 지하 요새로 돼 있다. 7000여 명 민군(民軍)이 모범적인 방위협력 모델을 보여주는 섬이다.

연평도 역시 눈앞에 해주만이 자리 잡은 군사 요충지다. 옛날에는 조기가 많이 잡혔지만 지금은 꽃게가 유명하다. 백령도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 5도와 황해도 사이에 해상의 휴전선인 북방한계선(NLL)이 그어져 있다.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은 “연평도는 (북에 대해) 목구멍의 비수이며 백령도는 옆구리의 비수”라고 두 섬의 전략적 중요성을 비유한 바 있다.

연평도를 둘러싼 바다에서 발생한 것이 1999년 연평해전과 2002년 서해교전이다. 두 해전은 모두 북한 해군이 NLL을 침범해 선제공격함으로써 시작된 국지 전쟁이다. 두 해전에서 우리 해군은 꽃 같은 젊은 군인들을 잃으며 끝까지 NLL을 사수해냈다. 시기적으로는 대북(對北) 햇볕정책을 편 김대중 정부 시절의 6월 꽃게잡이 철에 일어났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국방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연평해전은 ‘제1연평해전’, 서해교전은 ‘제2연평해전’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격하된 서해교전과 윤영하 소령 등 해군장병 6명의 희생을 명예회복시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군(軍) 안팎에선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던 연평해전은 ‘승전’으로, 6명이 숨진 서해교전은 ‘패전’으로 보는 인식마저 없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대남(對南) 태도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에 걸쳐 개성공단의 남측 상주요원 11명 추방, 서해상 미사일 발사, 노동신문 ‘이명박 역도(逆徒)’ 논평, ‘군사적 대응조치’ 위협으로 긴장을 높이고 있다. 우리 해군이 북한 영해를 여러 차례 침입했다는 생떼를 부렸다.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북은 전쟁 위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흑심을 또 드러낸 것이다.

북의 도발 전례로 볼 때 꽃게철인 6월 말 이전에 ‘제3연평해전’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장 다음 주에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기간(15∼19일)이 주목된다. 한미 간의 새로운 동맹 분위기를 방해하고, 핵(核) 신고와 관련해 미국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남측을 고립시키려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의 일환으로 서해 도발을 이용할 수 있다.

북은 각종 전투함정의 60%를 서해 5도 주변의 NLL 북방에 전진 배치해 놓았다. 박승춘(예비역 중장) 전 합참 정보본부장과 한철용(예비역 소장) 전 대북감청부대장은 “NLL이 뚫리면 수도권의 빗장이 풀리는 것”이라고 NLL 사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해군은 더욱 긴장해 NLL을 지키고 도발을 억제 또는 격퇴할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할 때다.

북이 다시 ‘제3연평해전’을 일으킨다면 이명박 정부와 신임 정옥근 해군참모총장의 의지와 군사적 역량을 시험하는 첫 무대가 될 것이다. 수시로 NLL의 빈틈을 노리는 북의 못된 버릇을 단호하게 고쳐줘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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