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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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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원자력 수출 주도하는 女傑
라하그에는 3기의 재처리공장이 있다. 노후한 1기는 해체 중이고 2기가 가동 중이다.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95∼96%의 우라늄, 1%의 플루토늄 그리고 3∼4%의 고준위 폐기물이 나온다. 핵폐기물을 담는 특수용기(캐스크)에는 6kg의 사용 후 핵연료봉이 들어간다. 캐스크 한 개 분량을 재처리하면 석유 30만 t에 해당하는 우라늄이 만들어진다.
요즘 라하그 재처리공장은 원자력 르네상스를 맞아 바쁘다. 지난달 말 이곳을 방문한 필자에게 프랑스원자력재처리공사 격인 아레바(AREVA)의 크리스토퍼 피카르 이사는 “라하그 공장에서만 세계 80∼100기의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를 연간 1700t가량 재처리한다”고 설명했다. 라하그야말로 세계 최대의 우라늄 광맥인 셈이다.
설립 초기엔 그린피스 등 반핵단체의 공격목표가 되었지만 요즘은 활기에 차있다. 온실가스 감축 압력과 우라늄 가격 상승으로 핵연료 재처리사업이 프랑스의 간판 비즈니스가 됐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핵연료 재처리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원전 59기를 소유해 원전 의존도가 75%나 되지만 프랑스 안에선 우라늄도 나지 않고, 엄청난 양의 핵폐기물을 감당할 방법도 없었다. 재처리 말고는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작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프랑스 국가경쟁력 순위는 18위다. 공무원 조직과 국영기업의 비능률로 전년도보다 3단계 더 낮아졌다. 하지만 원자력은 프랑스가 세계 1위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분야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에도 프랑스의 ‘아토믹 안’이 필요하다”며 프랑스의 원자력 정책을 노골적으로 칭찬했다. 아토믹 안(원자력의 안)은 아레바 회장으로 세계를 상대로 원자력을 수출하고 있는 안 로베르종을 지칭한다.
‘프랑스는 머리를 제대로 썼다. 대조적으로 독일은 어리석은 녹색주의에 빠져 원자력을 멀리했고, 좀 더 똑똑한 녹색주의인 영국은 이제 원전을 재가동하는 중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이 지적한 대로 녹색주의에 빠져 탈핵(脫核)정책을 주도했던 독일은 요즘 프랑스에서 전력을 수입하는 처지가 됐다. 슈퍼모델 출신 부인 카를라 브루니에 대한 관심 때문에 잘 부각되지 않았지만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영국 방문 의제도 양국 간 원자력 협력이었다.
발등의 불, 고준위 핵폐기물
지난 30여 년간 세계가 주춤거리는 사이에도 우리나라는 프랑스처럼 꾸준히 원전을 확대해왔다. 하지만 핵폐기물에 관해선 프랑스 같은 해법을 찾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지난해 경주 핵폐기물 처리시설 착공으로 핵폐기물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정부가 당초 부안에 건설하려던 핵폐기물 처리장에는 고준위 폐기물이 포함돼 있었지만 경주에 들어갈 것은 중·저준위 폐기물일 뿐이다. 정부가 난제를 남겨두고 미봉책으로 수습한 것이다.
미국은 스리마일 사고 이후 핵발전소를 짓지 않았지만 폐기물 처리 터는 확보했다. 일본은 재처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 6위의 원자력 강국으로 원전 수출까지 넘보게 된 상황에서 아직도 고준위 폐기물 처리 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프랑스는 재처리 문제를 정부에 떠넘기지 않고 의회에서 입법을 통해 풀었다. 이제 우리의 핵폐기물 문제도 공론의 장에 올려야 한다. 프랑스나 일본처럼 재처리를 할 것인가, 처분장을 지을 것인가. 이명박 정부와 새로 구성되는 국회가 머리를 맞댈 일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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