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수학 르네상스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이스라엘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브라함 트라흐트만(63)이라는 사람이 최근 40년 묵은 수학의 난제 하나를 해결했다고 한다. 누구든 현재 위치와 상관없이 목적지로 안내할 수 있다는 ‘2색 이동경로 설정 문제(Road Coloring Problem)’를 1년 만에 풀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40여 년간 세계 최고의 30, 40대 수학자 100여 명이 매달려 왔으나 풀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 60대 트라흐트만은 전직 러시아 수학자로 16년 전 이민 왔으나 일자리를 찾지 못해 예루살렘에서 경비원으로 일해 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인기 코미디언 겸 영화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기타노 다케시(61)가 일본 수학회로부터 특별 공로상을 받는다. TV의 수학 퀴즈쇼를 진행하면서 ‘문제와 씨름하고 지혜를 짜내는 모습을 통해 수학의 매력과 아름다움, 즐거움을 널리 소개했다’는 것이 수상 이유다. 수학 대중화의 생생한 사례다. 정보 통신 분야와 금융기법의 발전 등으로 수학이 소수 영재들이 아니어도 누구나 심취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인터넷 정보 보안의 핵심 암호 기술은 수학 없이 불가능하다.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도 수학 이론의 응용이 필수적이다. 환율 금리 주가 등 금융시장의 변동을 분석 예측하는 데도 수학자들의 기여가 컸다. 생명공학, 기상예측, 항공기 설계, 위성사진 전송, MP3, 인터넷 동영상, 고화질 TV, 스마트카드(교통요금결제)와 같은 영역도 수학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사회과학 연구도 수학 없이는 안 된다.

▷전신마비 상태에서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서울대 이상묵(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의 성공적인 재활에도 수학의 힘이 크다. 그가 의지하는 수십 종의 장애인 도우미 장비와 소프트웨어는 수학이 없었다면 애초 개발이 불가능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는 그는 “나를 살린 것은 줄기세포가 아니라 정보기술(IT) 장비”라고 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최근 미 의회 연설에서 미 교육의 경쟁력을 위해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도 “(서울대) 이공계 신입생 5명 중 1명은 정규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수학 보충수업이 필요하다”(오세정 서울대 자연대학장)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수학의 르네상스’가 절실하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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