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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월 30일 21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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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규모 세계 13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세계적인 토픽감, 놀림감이 될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치고 선거에서 주권의 위임을 받은 정부가 처음부터 누더기를 걸치고 출범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그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선진국일수록 제도가 짜임새 있게 만들어져 국가 운영이 물 흐르듯 매끄럽다. 불문법 국가에서는 관습이나 관행이 제도를 대신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우 단 하루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만 빈틈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제도들을 갖추고 있고, 정권 인수인계 기간이 2개월이나 되는데도 보통 삐걱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특이한 정치 상황이나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일리가 있다.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의 기본을 잘 지킨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제도는 이런 현실까지를 감안해 만들어야 한다. 제도가 시대 상황에 맞지 않거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다른 제도와 유기적 정합성(整合性)이 떨어지면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부조직 개편은 법률 개정 사안이라 국회 통과와 현직 대통령의 서명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권 출범 전에 조직 개편을 시도하지 않으면 모를까, 하려고 한다면 5년마다 지금과 똑같은 논란과 마찰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비단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상 대통령의 총리 임명은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고, 장관 임명에는 총리의 제청이 있어야 한다. 정권 교체기엔 이것도 문제를 낳을 수 있다. 1998년 김대중 정권 출범 때도 그랬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김종필(JP) 총리 후보자가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해 장관 임명 제청을 하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전(前)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 씨가 이를 대신했다. JP는 정권 출범 후 6개월간이나 ‘서리’ 꼬리를 달아야 했다.
1987년 지금의 민주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억제하기 위한 여러 제도가 도입됐다. 2000년 인사청문회법이 만들어져 총리 인사청문회에 이어 장관 인사청문회(2005년)까지 실시되고 있다. 2003년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민주화 측면에서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국가의 원활한 운영을 심각히 고민해 볼 때가 됐다.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를 지향한다면 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미디가 연출되고, 혼란과 소란이 생기는 것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현직 대통령의 자존심을 지켜 주면서 새 정부가 국민의 박수 속에 멋지게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차기 정부와 정치권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