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경찰청 기자실

  • 입력 2007년 12월 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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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은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본관 2층 모퉁이에 있는 기자실을 폐쇄하기 위해 1일 전화와 인터넷망을, 3일 난방과 전기를, 4일 오전엔 기자실 앞 복도의 전력선마저 끊었다. 4일 오후 5시 반 그곳에 가 보았다. 경찰청사의 다른 사무실과 바깥세상은 온통 전깃불로 환했지만 기자실에는 촛불 몇 개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쫓겨나기를 거부하는 기자들은 이 촛불 아래서 기사를 쓰고 있었다. 실내엔 냉기가 감돌았다. 기자들은 당번을 정해 철야로 기자실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 기자실도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主導)한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의 현장이다. 소위 ‘참여정부’가 국민 참여를 막고, ‘민주화세력’이 반(反)민주에 앞장서 온 것처럼 ‘취재지원 선진화’는 ‘취재 봉쇄’의 허명(虛名)이요, 가면(假面)이다. 노 정부는 이런 가면을 쓴 채 취재 방해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고 있다. 정부가 기자들의 취재 접근을 막아 신속 정확한 보도를 못하게 하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의 보도 통제보다 훨씬 교활한 언론 탄압 술책이다.

▷경찰청 기자들이 촛불과 컴퓨터 충전기에 의존해 기사를 쓰고 있던 그 시간에 공보관 등 경찰 간부 12명을 포함한 13명은 4박 5일 일정으로 일본에 가 있었다. 일본의 경찰서 기자실 운영 실태를 살핀다는 핑계로 국민 세금을 환전해 떠난 외유(外遊)였다. 여행사 일정표에 따르면 첫날을 빼고는 모두 온천을 포함한 관광이다. 이를 위해 1인당 96만 원씩 모두 1250만 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8명은 개인 비용을 보태 가족까지 동반했다.

▷일본 도쿄에 있는 한국대사관에는 경찰청이 파견한 ‘외사협력관’이란 직함의 경찰관이 상주하고 있다. 계급은 경무관이다. 그가 잠시만 알아보면 일본 경찰서의 기자실 운영 실태 정도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경찰 간부 13명이 몰려가 국민 혈세를 써 가며 법석을 떨 이유가 애당초 없다. 그렇다면 우리 경찰청은 일본 온천의 수질(水質)에 관심이 더 있는 건가.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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