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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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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가치 무시 반지성 팽배
그러나 사람들은 백악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흥분한 나머지 수천 달러의 고급 세공유리그릇과 도자기를 부쉈다. 음료수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고 주먹질로 코피를 흘리는 사람이 속출했다.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 백악관 정원에 음료수를 내다 놓아야 했다. 당시 연방대법원 대법관이었던 조지프 스토리는 이날을 “마치 폭도들이 승리한 것 같았다”라고 논평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분명 잭슨 시대는 큰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소수의 유산자 엘리트에게만 제한됐던 정치가 실질적으로 모든 백인 성인 남성에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은 폭력과 방종으로 환영인사를 했다. 하지만 잭슨의 정치적 동지였던 애모스 캔들은 “(아수라장이 된) 이날은 국민에게 자랑스러운 날이었다”라고 강변했다.
미국의 이런 반지성주의 문화는 보통 사람의 위대성을 지속적으로 과장해 왔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포리스트 검프’가 대표적인 예다. 평균 이하의 저능아인 주인공은 타인의 조언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비주체적인 삶을 살면서도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존 레넌 등의 유명인을 만나고 비영웅적 영웅으로 등장한다.
월터 베냐민이 지적했듯이 이미지가 난무하는 기술복제시대에 접어들면 아우라가 사라지고 전통가치가 해체되고 소멸된다. 개인은 자기중심적 사회 속에서 사회문제에 냉담해지고 자신만의 이익에 몰입해 결과중심적인 행동을 염치없이 감행한다. 백악관의 잭슨 지지자들의 행동과 포리스트 검프의 삶은 영웅시되고 전통가치를 보존해 온 제도와 아카데미아는 기득권의 옹호자로 폄훼되거나 무시된다.
미국 대중문화의 반지성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우리 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자율성을 상실하고 정부 기관에 목맨 대학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단속의 대상이다. 정치인이나 종교인, 노동자, 대학생 모두가 적법한 절차를 기대하기보다는 시위와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지난주에는 국립대 교수가 자신이 낸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당하자 법원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아! 현직 판사들을 죽이고 싶구나’라는 제목의 책을 부장판사에게 보내 간접적으로 협박했다. 올해 초에는 재임용 탈락에 관한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전직 대학교수가 부장판사를 석궁으로 테러하기도 했다.
예절교육 제대로 해야
인터넷에는 악성 댓글(악플)이 흘러넘친다. 한 연예인의 자살을 몰고 온 천박한 악플은 자살조차 놀잇감으로 유희한다. 그러면서도 악플러는 자신들을 인터넷 세계의 영웅으로 자처한다. 반지성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는 품격 제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청소년 자녀를 위한 예절교육이 붐을 이루고 있다. 예의를 갖춰 말하고 옷을 입고 식사하는 예법만이 아니다. 법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동정 그리고 경의(敬意)의 덕목을 강조하고, ‘속 뒤집어지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를 사회적으로 건강하고 적절하게 해결할 방법도 포함된다. 자기밖에 모르는 유아적 행태를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제대로 된 사회예절과 품격 교육이 절실한 때이다.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미국법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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