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독설가’ 北 유엔대사의 일시적 변신?

  • 입력 2007년 10월 3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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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하는 대북(對北)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자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사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전적으로 거부한다. 결의안 채택은 조폭 같은(gangster-like) 짓이다.” 박 대사는 안보리결정을 거칠게 비난한 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어 그는 기자들에게 “미국이 압력을 가중하면 우리는 이를 전쟁 선포로 간주하고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사의 행동은 유엔 외교가에서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과격한 용어 선택은 물론 자신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쏟아 놓고 퇴장하는 것은 외교 관례를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유엔에서 18년째 근무하면서 ‘북한의 입’ 역할을 해 온 박 대사는 이 사건 이전에도 독설가로 악명이 높았다. 북한 핵실험 직후 그는 “안보리가 사악하고 쓸모없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보다 (핵실험을 성공시킨) 우리 과학자들을 축하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난 10월 1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집무실. 반 총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박 대사를 만났다. 반 총장이 “회담이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기를 원한다는 사무총장의 뜻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해 달라”고 말하는 동안 박 대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경청했다.

그는 배석한 유엔 간부들을 의식해 “조선말로 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분도 있는데…”라고 했다. 이에 반 총장이 영어로 당부의 말을 재차 전하자 박 대사도 예의를 갖춘 영어로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다. 방금 들은 이야기와 이곳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가능한 한 빨리 본국에 전하겠다”고 말했다.

면담을 취재한 한 일본 기자는 “박 대사가 ‘예스’라고 말하는 것은 오늘 처음 봤다. 항상 ‘노’만 해 왔는데…”라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보였다.

지금까지 유엔에서 북한 관련 뉴스는 대개 핵, 미사일, 인권 탄압 등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그에 대해 박 대사는 거친 언설 외에 마땅한 논리적 대응책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모처럼의 호재로 얼굴이 펴진 그를 보며 북한 외교관들이 안쓰러웠다. 북한이 변해 더는 ‘독설가 박 대사’와 같은 북한 외교관을 보지 않게 되면 좋겠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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