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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8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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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도전적인 제목의 전면광고가 이달 1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등장했다. ‘의회에 보내는 청원서’와 함께 뜻을 같이한 1028명의 미국 경제학자 명단이 실렸다.
우린 물건 팔면서 문 닫자니
후버 대통령 시대라면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1930년 미 의회는 대공황에 허덕이는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엄청나게 올리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반대하는 경제학자 1028명이 탄원서를 냈지만 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의 보복 조치가 연쇄적으로 이어졌고 결국 전 세계 교역량이 급속히 줄면서 장기 공황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최근 미 의회의 분위기는 1930년 못지않다. 눈사태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를 줄이는 대책으로 줄잡아 50여 개의 보호무역법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후버 시대와 똑같은 1028명의 경제학자들이 의회의 기류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77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호소다.
미 의회의 칼끝은 직접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관계를 들여다보면 이런 보호주의 물결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작년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2395억 달러로 웬만한 나라의 무역규모보다도 크다. 한 나라에 대해 매월 200억 달러의 무역적자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이 아니라면 파산에 직면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국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대규모 무역적자는 미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로 인한 것이지만 일반 국민은 흑자를 많이 내는 중국에 적개심을 품는다. 이런 국민정서를 타고 미 정치인들은 보호주의 색채를 드러내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얼마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구나 중국은 아직 많은 부분이 미국처럼 투명하지 않다. 변동환율제를 채택하지 않아 환율을 조작한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미국 일각에서는 위안화가 최소한 미국 달러 가치의 3분의 1까지는 절상돼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상황인데도 미 경제학자들은 왜 청원서를 발표했을까. 그것은 무역보복이 국민감정을 풀어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미국경제에 해악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민정서나 일부 이익집단의 이해를 반영하다 보면 국가 경제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집단 의사 표출이다.
한국에서도 중국을 싫어하는 사람은 미국의 대중 무역보복을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보호주의 움직임은 우리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호주의의 칼끝은 중국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나라로도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만큼은 아니라도 미국에 대해 적지 않은 무역흑자를 내는 나라다.
길 제시할 경제학자들 없나
바로 이런 이유로 한국은 보호주의를 주장할 수 없다. 강력한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상품을 해외에 내다팔아 살아가는 나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상대국 시장에 물건을 팔면서 우리 시장만 닫아둘 수는 없다. 우리의 보호주의는 즉시 상대국의 보호주의를 부른다. 따라서 최근 한미FTA에 대해 일부에서 보이는 폐쇄적 성향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인구가 많고 소득수준이 높아 자립경제가 가능한 미국 같은 나라에도 보호주의는 손해라는 것이 지금까지 검증된 경제학의 이론이다. 하물며 좁은 국내시장만 갖고는 생활수준을 높일 수 없는 한국 같은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모두가 가난해지자는 얘기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상대에게 우리 시장을 내줘야 한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한미FTA로 어지러운 한국 사회에 집단으로 길을 제시할 수는 없는 것일까.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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