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민웅]속임수로 가득 찬 KBS의 수신료 인상劇

  • 입력 2007년 7월 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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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경영진이 수신료 인상을 위해 지난 두 달 동안 벌여 온 편법과 속임수에 가까운 행동을 보면 이들이 과연 높은 도덕성이 필요한 공영방송을 이끌 자격이나 있을까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먼저 KBS가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 조사를 살펴보자. 왜 다른 조사에서는 KBS 수신료 인상 반대가 찬성보다 훨씬 많이 나오는데 유독 KBS 조사에서는 수신료를 무려 60%나 올리는 인상안에도 오히려 찬성이 57.2%로 더 많이 나오는가 하고 독자 여러분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바로 그 찬성률을 유도한 문제의 ‘문항 10’은 이렇다. ‘○○님께서는 디지털로 전환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KBS의 공익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신료가 어느 정도 인상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건 조사 설문지 작성의 대표적 금기 사항인 이중적(double-barrelled) 질문이다. 찬성한 사람이 디지털 전환 재원 마련에 찬성한 것인지, 공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 것인지, 아니면 두 가지 모두에 찬성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문항의 선택지를 보면 더욱 가관이다. ‘(1)500원 정도 인상 (2)1000원 정도 인상 (3)1500원 정도 인상 (4)2000원 이상 인상 (5)인상할 필요가 없다’로 되어 있다. 이건 일종의 속임수다.

유도성 설문으로 반대여론 왜곡

이런 경우에는 질문을 반드시 두 개로 나누어 먼저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조건적(contingency) 질문을 한 다음에 찬성한 사람을 상대로 얼마를 올리는 것이 적절한지 물어야 한다. 또 응답자의 ‘당연한 무지(rational ignorance)’를 극복하기 위해 질문에 앞서 제시한 ‘쇼 카드’ 내용이 찬성 답변을 유도하는 방향성이 실린 정보를 담고 있다. 이런 엉터리 조사로 관계 기관과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KBS는 또 지난달 사전 의견 수렴이 아닌 사후 요식 절차를 갖추기 위한 공청회를 열었는데 여기서 KBS가 배포한 홍보자료에서도 여러 가지 편법과 속임수가 발견됐다. 명지대 최선규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홍보자료는 1997년에 1224명이던 KBS 간부직을 2006년에는 206명으로 줄여 무려 1018명을 구조조정한 것처럼 보고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춘 결과라는 것이다.

감사원의 KBS 감사 자료에 따르면 KBS 간부직은 1998년보다 2003년에 오히려 97명이 늘어났는데도 홍보자료는 이 수치를 일부러 숨기고 마치 1997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 것처럼 윤색하고 있다. 2003년 이후의 간부직 축소도 정부와 공기업의 팀제 도입 방침에 따른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간부직 수만 줄였지 직급(1, 2급)은 그대로 유지해 국장이나 부장 역할을 하지 않는데도 봉급은 이전처럼 챙겨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밖에 제작비 투입이 적정하게 이루어졌는지, 외주 제작비도 내부 제작비와 비교할 때 합리적으로 책정하고 집행했는지 검증이 필요한데, 이에 관한 자료는 거의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는 진작 KBS 경영자료 공개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현재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의 BBC는 물론이고 일본의 NHK도 하는 이사회 회의록 공개도 굳이 거부하고 있다.

KBS는 대통령선거의 어수선한 국면을 틈타 졸속과 편법으로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경영 실태를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해 그동안의 방만한 경영과 정파적 불공정 보도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구체적 개선 방안을 이행한 뒤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방만한 경영상태 먼저 공개해야

특히 KBS는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의 후보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정하게 보도할 것임을 엄숙하게 약속하고 실천해야 한다. 수신료 인상은 그런 실천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 다음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 만약 KBS 이사회, 방송위원회, 그리고 국회의 어떤 정치세력이 KBS의 수신료 인상안을 정파적 관점에서 졸속 처리한다면 국민의 만만찮은 저항과 선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민웅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교수·언론학 minw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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