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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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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V 시리즈물 ‘24’에 등장하는 흑인 상원의원의 말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확정적이었던 이 주인공은 뒷골목에서 마주친 흑인 불량배가 “50달러를 내놓으라”고 위협하자 이렇게 답했다.
흑인의 상대적 빈곤이 구조적 이유에 앞서 타인 의존성 때문이라는 뜻처럼 들리는 이 말은 미국 정계에선 금기어에 속한다. 이 같은 발언을 하는 정치인, 특히 흑인 정치인을 보는 것은 TV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어느 ‘모자란’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자기 식구를 상대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점은 같지만 물론 정치인은 아니다. TV 드라마 ‘코스비 가족’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흑인 코미디언 빌 코스비(70). 그는 은퇴 이후 (한창 때부터 했으면 더 좋으련만) 흑인 청소년 꾸짖기가 본업처럼 돼 버렸다.
2004년 5월 흑백차별 소송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흑인단체(NAACP) 행사에서 연단에 그가 섰다.
“흑인 부모들은 잘 들어라. 연 소득이 얼마나 된다고 중학생 아이들한테 500달러 주고 농구화를 사 주느냐. … 아이들 영어는 그게 뭐냐. 길거리에서 들어봤더니 영어도 아니더라. 그래 갖고서는 절대 의사(같은 전문직 종사자)가 될 수 없다.”
워싱턴 정치권에서 ‘코스비형’을 찾는다면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떠오른다.
그는 민심에 역주행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국민의 60%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할 때, 공화당에서조차 지역구 민심이 반전으로 기운 의원들부터 전쟁 비판으로 돌아설 때, 그는 ‘추가 파병을 통한 제압만이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판단이 군사적으로 맞는지는 현재로선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공화당의 차기대권 1순위 주자로서 안전운행 대신 국민정서를 거슬러 가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만큼은 평가할 만하다.
사실 정치적 반대세력을 비판함으로써 자기편을 규합하는 것만큼 쉬운 정치는 없다. 그러나 한 단계 높은 정치를 하려면 나, 내 지지층, 내가 주창하는 이념의 질적 개선을 위해 당장의 손해가 예상되는 일을 회피해선 안 된다.
진보 지도자가 ‘보수는 썩었다’를 열 번 말했다면 ‘우리네 진보도 이런 건 고치자’는 말을 한 번쯤은 해야 마땅하다. 내가 보수 지도자이고 한국의 강남이 대표하는 현 질서에서 성공한 이들이 제대로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강남도 고칠 건 고치자”는 말까지 꺼내야 한다. 강남구 서초구를 지역구로 둔 정치인이나 이 지역에서 몰표를 얻는 정당의 지도자가 이런 말을 했다는 말을 기자는 들어본 일이 없다.
발등의 불인 한미 간 쇠고기 협상의 뼛조각 논란은 어떤가. 10대 무역대국이라는 한국은 지금 워싱턴 바닥에서 “국제 무역의 관행과 겉도는 수준의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농촌지역 의원들만 ‘국민 보건주권’을 말하는 동안 “나라를 제자리로 돌려놓자”고 말해 오던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는 왠지 모르게 침묵으로 일관한다.
선뜻 나설 마음이 들지 않는 정치인에게는 앞에서 언급한 빌 코스비의 연설 녹음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http://www.washingtonpost.com/wp-srv/mmedia/metro/052304-1s.htm)
그의 흑인 자성론에 현장의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들은 야유를 보내지 않았다. 그들은 박수와 환호로 노(老)코미디언의 용기에 경의를 표했다. 한국의 유권자가 이들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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