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핵 군축’ 카드로 6자회담 찬물 끼얹는 北

  • 입력 2006년 12월 18일 22시 53분


13개월 만에 어제 재개된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 군축회담’을 들고 나왔다. 미국이 먼저 대북(對北) 적대 정책을 버리고 제재를 풀 경우 핵 포기에 관한 작년의 9·19 공동성명 이행 문제를 논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핵문제 논의는 ‘같은 핵보유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와의 핵 군축회담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상황은 아니지만 사안의 본질을 흐리면서 끝없는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북의 전술전략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 말려들 수는 없다. 북의 요구는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한 핵실험으로 동북아 및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뿌리째 흔든 자신들의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물귀신 작전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문제 삼음으로써 북핵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려는 노림수이다. 그러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자 우리의 최종 목표’ 운운하니 그 이중성이 역겹다.

첫날 회의만 보고 회담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성급한 면이 있지만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로 그칠 공산이 커진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북을 상대해 ‘당근’으로 핵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애당초 비현실적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딱한 것은 북의 변화를 기대하며 김칫국부터 마신 우리 정부다. 정부는 6자회담이 열리기도 전부터 북에 쌀과 비료 지원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이 핵무기를 사용할 때 (우리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북은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다. 북이 숨쉴 수 있게, 밥 굶어죽지 않게, 좀 같이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판이니 오죽하겠는가.

미국은 이번 회담에 앞서 북에 “우리가 외교와 제재의 갈림길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젠 우리 정부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을 계속 일방적으로 편들다가는 북핵 문제를 풀지도 못하면서 한미동맹만 악화시킬 것이다. 말이 안 통하면 제재가 불가피함을 북에 일깨워 줘야 한다. 북에 끌려만 다니다가는 우리의 재앙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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