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정호]우리도 이런 대학 하나쯤은

  • 입력 2006년 12월 15일 02시 58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다윈 칼리지. 창립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케임브리지대에 있는 32개의 칼리지 중 가장 젊은 편에 속한다. 아침 식사시간이면 학부생과 대학원생, 교수가 하나 둘 모여든다. 생화학을 전공하는 노벨상 수상자와 국제정치학을 연구하는 교수, 학부생이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는 풍경은 전혀 낯설지 않다. 저녁이 되면 학교 안의 카페테리아에 불이 켜지고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미국의 이라크 공습, 새로 발간된 네이처지의 특집 등 다양한 화제를 둘러싸고 밤늦도록 토론을 벌인다.

케임브리지대의 학생과 교수진은 필히 학과나 학부뿐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칼리지에 소속돼야 한다. 모든 학부생은 반드시 칼리지 기숙사에서 지내야 한다.

모든 칼리지가 기숙사, 식당, 도서관, 체육관, 컴퓨터 시설, 오락실, 카페를 갖췄다. 학과 강의 외에 학부생을 위한 개인교습, 생활지도, 과외활동 등 대부분의 생활이 여기서 이뤄진다.

칼리지에는 슈퍼바이저(생활지도교수)가 학부생의 학문 취미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상담해 준다. 물론 어떤 과목을 수강할지, 주말에 어떤 스포츠에 몰두할지, 방학 중에 어디로 여행할지 같은 모든 결정은 학생이 스스로 내려야 한다. 대학에 입학한 순간 그들은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다.

그들을 세계의 지도자로 만드는 요인은 훌륭한 시설과 탁월한 교수진뿐만이 아니다. 20세에 단행한 홀로 서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덕택이다.

영국 대학의 칼리지 제도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학생이 홀로 서거나 어울리기를 통해서 학문적 사회적 국제적 관심사를 나누는 값진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은 어떤가. 지하철에서 대학생의 대화 내용을 들으면 몸은 이미 성인인데도 내용이나 말투는 초등학생과 다를 바 없어 놀랄 때가 많다. 새로운 사람과 적극 대화하거나 교류하려 하지 않고 초중고교 동창과 어울려 다니거나 소수의 학과 친구하고만 대화를 나눈다.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손에서 떼지 못하거나 컴퓨터 화면에 얼굴을 묻고 사는 학생도 허다하다.

일본의 동물행동학자 마사타카 노부오 교수는 현대 젊은이의 행태가 일본원숭이와 꼭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일본원숭이는 집단행동을 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원숭이와는 새로운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온종일 자기 방에 틀어 박혀 밖에 나오지 않거나 휴대전화를 들고 내용 없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청소년이 이들이다.

마사타카 교수는 “현재 일본의 청소년이 원숭이로 퇴화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주된 이유로 부모의 과잉보호를 꼽는다. 과잉보호를 받은 아이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서적인 위기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 특히 대학생은 20세가 넘어서도 집을 떠나지 못하고 부모의 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넓은 캠퍼스와 좋은 자연 환경,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와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며 지덕체와 국제 감각을 기를 수 있는 대학이 이제 한국에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때가 되지 않았나.

알렉시스 토크빌이 감탄했던 미국의 발전도 세계 최고의 대학 덕분이란 분석이 있다. 반도체공장 하나 더 건설하는 것만이 미래에 대한 투자가 아님을 아는가 모르는가.

한정호 연세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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