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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13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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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를 비롯한 소송관계인들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판사실이 있는 층의 복도에 스크린도어(screen door)가 설치된다는 소식이다. 몇몇 지하철역에서나 봤던 스크린도어가 판사실 입구에 설치된다니 첫 느낌이 우스꽝스럽다. 이 문은 판사의 인터폰 연락 없이는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법정 밖에서의 판사-변호사 대면(對面) 접촉을 일절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법조계의 뿌리 깊은 ‘전관(前官)예우’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작년부터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시범 실시돼 온 이 시스템이 전국 법원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서초동 청사에선 이를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법원 측은 특히 법복을 벗은 지 1, 2년밖에 안 된 전관 변호사들을 겨냥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판사실을 무시로 드나들며 법정 밖 변론을 통해 자신의 소송의뢰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낸다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다. 초년생 전관 변호사들에게 소송사건이 몰리고, 승소율도 비교적 높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대로다. 전관 변호사는 퇴임 1, 2년 안에 승부가 나기 때문에 이때 평생 먹을 것을 벌어 놔야 한다는 ‘법조계 통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법원-검찰 간에 논란을 빚은 ‘공판중심주의’도 이런 폐단을 없애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자료나 밀행(密行)이 아닌 공개재판에 중심을 두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스크린도어 설치는 조관행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현직 판사 비리 파문이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는 이런 스캔들이 변호사와의 접촉 때문에 생겼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변호사 등의 출입을 통제하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판사들에 대한 사법부 자체의 불신이 깔려 있다는 것이 ‘스크린도어의 이중성’이다. 스크린도어를 시범적으로 설치해 변호사들의 판사실 출입을 막음으로써 전관예우 사례가 실제로 줄었다는 통계나 증거가 있는지 모르겠다. 유선전화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e메일 등 각종 통신수단이 발달한 지금 대면 접촉을 막는다고 판사-변호사 간의 ‘거래’가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경우에 따라선 판사실을 찾아가 소송의뢰인의 특수한 사정을 호소하는 것이 ‘사법적 정의’ 실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의 만남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것은 직업윤리에 충실한 판사 변호사들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판사들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정도(正道)를 걷는 판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호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판사는 변호사와의 대면 접촉을 아무리 막아도 은밀한 방법을 찾을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오히려 바른 자세를 가진 판사들의 자존심과 자부심, 명예감정을 훼손하지 않을까 부작용이 걱정된다. 그런 점에서 스크린도어는 판사들에게 ‘욕된 감옥’일 수 있다. 국민에게 보여 주기 위한, 수준 낮은 전시행정이고 예산만 낭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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