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부메랑 되는 대통령 참모들의 글

  • 입력 2006년 7월 12일 21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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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던 6월 26일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청와대브리핑’에 ‘한미 양국, 관련 정보 공유-같은 방향으로 대책 조율 중’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상황을 예단하여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사태의 악화를 바라는 의도에 말려드는 결과를 자초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박선원 안보전략비서관도 같은 날, 같은 곳에 “정부는 항공기의 조종사와 같기에 각종 사실 정보를 토대로 늘 냉철한 판단을 유지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띄웠다.

두 글 다 정부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하는 야당과 언론에 대한 일종의 반격성 주장이었다. 글 자체만으로 본다면 맞는 말이고 훌륭한 표현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이 글들이 게재된 시점 전후(前後)의 상황 전개를 복기(復棋)해 본다면 내용에 공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상황을 예단해선 안 되고, 사실 정보를 토대로 늘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두 사람의 주장은 미사일 발사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리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7월 5일 북한이 미사일을, 그것도 7기나 발사함으로써 대통령 참모들이 ‘냉철한 판단’이 아니라 ‘안이한 판단’을 해 왔음이 확인됐다. 북한이 치밀하게 발사 준비를 해 왔는데도 몰랐고, 그에 따라 발사를 막을 대책도 소홀히 했다는 걸 자인한 꼴이다.

미사일 발사 후에는 서주석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이 글을 띄워 “상황이 발생했다고 대통령이 꼭두새벽에 회의를 소집해서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현 시점에서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라고 주장해 비판을 자초했다. 이어 홍보수석비서관실까지 나서서 “굳이 일본처럼 새벽부터 야단법석을 떨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 쓸데없이 일본 정부의 반발을 부르고 오히려 상황을 꼬이게 만들었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사람이다. 굳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띌 필요도, 큰소리를 낼 필요도 없다. 더구나 송 실장과 서 수석, 박 비서관은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조정·총괄하는 ‘민감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의 생각과 의견은 곧 대통령의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니 불필요하게 외부에 공개돼 좋을 일이 하나도 없다. 자칫하면 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 있다. 전략이나 협상을 맡은 사람들은 말을 아낄수록 좋은 법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대통령이나 정부가 목표와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을 때, 이렇게 공개된 의견들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심지어 부메랑이 돼 발등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정책이나 목표와 전략, 전술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인데, 참모들의 ‘무분별한’ 글들이 본인은 물론이고 대통령에게까지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국익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 참모들은 가급적 의견성 글쓰기를 자제했으면 좋겠다. 행여 공명심이나 과욕에 의한 것이라면 특히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의 그림자’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 나지 않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게 참모들이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 아닌가. 언론이나 야당과 대립 각을 세우는 것도 그들의 몫이 아니다. 그래도 정히 쓰고 싶은 의견이 있다면 차라리 필명을 ‘노무현’으로 하는 게 어떻겠는가. 그렇게 하더라도 글을 쓸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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