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윤재]정치의 質은 정치인의 질에서 나온다

  • 입력 2006년 7월 1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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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이 다가오고 있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이후의 한국현대사는 자유민주주의의 도입과 전개로 이어지는 ‘민주화(democratization)’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제도와 법의 도입으로서의 ‘형식적’ 민주화, 민주정치의 물적 기반을 확보하는 ‘경제적 근대화’로서의 민주화, 그리고 민주정치의 건강한 제도화를 향한 ‘정치적’ 민주화 단계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의도적인 연계 속에서 전개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도입 이후 경제적 근대화와 각종 개혁 이니셔티브들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그 이유를 정리해 보자.

첫째, 역대 최고 지도자들이 나름대로 업적을 낸 것이 사실이지만, 그 리더십의 질(quality of leadership)이 충분히 탁월하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학박사였고 건국의 공로자이긴 했지만 법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수범을 보이는 데는 이스라엘의 초대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을 따라갈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건설을 추진해 보릿고개를 없애는 데는 성공했지만, 친환경적 경제 건설과 함께 국민들을 민주시민으로 만들고 지속적인 국가경영시스템을 구비하는 데서는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총리의 식견을 따라가지 못했다. 또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승리로 최고 지도자가 돼 각종 개혁을 수행했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도덕적 수월성을 실천해 보이는 데 실패했고 권위주의 정치문화를 청산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직설적인 발언과 미숙한 국정 운영으로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둘째, 정치인들은 대체로 ‘목적가치(end-values)’에 경도된 나머지 ‘행동양식 가치(modal values)’의 실천에 소홀했다. 시기마다 정치인들은 반공건국, 조국 근대화, 그리고 정치 민주화라는 목표 달성에 집착한 나머지 각자의 행동을 제대로 다스리는 데는 소홀했다. 즉, 성실, 준법, 정직, 공평, 약속 지킴, 일관됨 등과 같은 주요한 행동양식 가치들을 실천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치인은 부정, 비리, 불법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국민들의 신망을 얻는 데 실패했다. 우리는 기독교가 서양민주주의의 행동규범들을 형성하고 실천하는 현실적 배경이었음을 경시했다. 또 동양 고전이나 조선시대의 유교 정치가 일깨워 주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지혜를 무시했다. 민주주의란 나무가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해서 그 피가 반드시 유혈혁명일 필요는 없다. 나라에 따라서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도 있다. 이때 정치인들이 이 같은 행동양식 가치들을 땀땀이 실천하는 것도 희생이요, 그러한 희생이 곧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피가 되는 것이다.

셋째, 국민 개개인들을 나라의 책임 있는 주권자이자 주인으로 가르치고 육성하는 시민교육(civic education)에 소홀했다. 미국의 원로정치학자 제임스 번스 씨는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정치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각급 학교에서 꾸준히 정치교육을 수행함으로써 국민 각자를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 만드는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의 경우 그러한 정치교육은 비정상적이었고 부족했다. 군부독재시절에는 ‘국민윤리’가 수직윤리가치의 주입과 이념 대결에 치우쳤고,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뒤에는 그것을 대체하는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낡은 권위주의시대적 발상’이라는 이유로 거부됐다. 최근에는 교육계가 분열돼 서로 다른 내용의 ‘의식화’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성인들은 함께 사는 기술이 서투르고 대화와 토론의 즐거움에 낯선 채 자랐다. 미국이나 싱가포르처럼 국가가 지원하는 정치교육이 꾸준히 지속됐더라면 지금의 우리 정치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국민 각자가 줏대 있는 민주시민이었다면 선거 때 아무에게나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정치는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으면서도 성공적인 민주화 과정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정치의 질을 더 높여야 할 때다. 그것은 우선 정치인들의 질적 수준이 향상될 때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젠 누구나 이 문제를 숙고해야 한다.

정윤재 객원논설위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tasari@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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