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덕민]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

  • 입력 2006년 7월 4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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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을 보내면서 슬픔과 함께 내내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팔십 노모는 아들을 처음 본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오열하고 있었다. 김영남 씨와 딸 은경 씨,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요코타 메구미와 그의 어머니, 그들은 너무도 기구한 삶을 살아왔다. 어린 자식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지냈을 한국과 일본의 부모들을 생각해 보자.

김 씨는 그나마 행복한 편이다. 같은 시기에 4명의 고등학생이 더 납치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와 동년배인 그들이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부르며 향한 피서지에서 유괴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미성년자 유괴는 극형에 처해지는 중죄이다. 6·25전쟁 이후 489명의 납치가 확인되었고 20여 명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충일에 한 방송사는 전사자 유해 발굴에 대한 특집 방송을 했다. 유복자로 태어난 딸은 아버지가 전사한 전방으로 향한다. 철책 너머 한 고지에 아버지가 묻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애틋한 정을 담은 편지를 읽는다. 그 광경에 누구도 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3만 명의 참전용사가 여전히 가족 품에 돌아가지 못하고 고국산천 어디인가에 묻혀 있다. 4만 명의 국군포로가 돌아오지 못했고 546명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6·25전쟁 당시 납치된 사람은 8만 명이 넘는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나라는 왜 존재하는가? 정치학의 낡은 이론서를 들추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생존이 불확실한 투쟁 상태에 놓여 있었다. 토머스 홉스에 따르면 자연 상태의 불확실한 생존에서 벗어나 삶의 보장을 얻기 위해 인간은 국가라는 절대 권력을 탄생시킨다.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그 대신 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생명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의무를 지게 된 것이다. 국가의 핵심 존재 이유는 국민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나라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더는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는 의무를 진다’고 적고 있다.

먹고살기 바빠서, 안보 위협 때문에, 남북관계를 위해 대한민국은 소수 국민의 인권을 희생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한 사람의 인권은 수백만 명의 인권과 다름없이 소중하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민을 외면할 때 누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 하겠는가? 경제 발전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한 대한민국, 일류 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대의를 위해 개인의 인권을 희생하는 일이 더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예를 들 필요가 없다. 비전향 장기수를 끝까지 챙기는 북한을 보자. 국민 보호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다.

납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 정부가 나서게 된 데는 일본 국민의 뜨거운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독일 월드컵 오심과 관련해 누리꾼들은 50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납북자·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국민의 1000만 명 서명이 이루어진다면 문제 해결의 강력한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이웃의 인권이 존중될 때 나의 인권도 보호받을 수 있다. 납북된 국민과 국군포로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날, 월드컵보다 훨씬 가치 있고 진정한 애국심을 국민에게 심어 줄 것이다. 김 씨의 온 가족이 ‘붉은악마’들과 함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대한민국을 목청껏 부르기를 기대한다. 그런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울 것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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