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금정책 들러리 거부한 조세개혁위원장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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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원(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정부 쪽과 토론이 안 된다”면서 최근 사의(辭意)를 표명했다. 정부가 세제(稅制)개편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이를 국민에게 설득할 논리를 개발하는 작업만 위원회에 맡기니 ‘들러리 위원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장(市場)원리를 왜곡하고 위헌(違憲)시비까지 낳는 부동산 관련 세제는 작년 8·31 부동산 종합대책에서 다 확정해 버려 위원회에서는 다루지도 못한다고 하니 ‘무늬만 위원회’인 셈이다.

이 위원회는 정부의 조세개혁안을 심의하고 공론화(公論化)한 뒤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일을 맡았다. 중장기 세제개편엔 각계각층의 의견이 수렴돼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 됐다”고 곽 위원장은 밝혔다. 정부는 세제를 얼마나 왜곡하려고 전문가 토론조차 두려워하는지 궁금하다.

곽 위원장은 “지금은 성장이 중요한데, 정부가 세금을 더 걷어 양극화 해소용으로만 쓰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 상위 10% 계층에서 세금을 더 걷어 하위계층을 지원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상은 경제활동 의욕을 떨어뜨려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많은 전문가의 견해와 일치한다.

정부는 ‘우리 국민의 조세부담률이 선진국보다 낮다’고 주장하지만 곽 위원장은 “복지서비스 수준, 노동시장 여건 등이 모두 달라서 단순비교하면 안 된다”며 이를 일축했다. 소득세 법인세 등을 더 올리면 저항이 얼마나 심할지 뻔하다고도 했다. 또 노 대통령이 “우습게보지 말라”고 하는 8·31대책에 대해서도 곽 위원장은 “지속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낮게 평가했다. ‘큰 정부’를 추구하고 반(反)시장적 부동산정책을 선호하는 정부 인사들이 이런 쓴소리를 반겼을 리 없다.

곽 위원장의 사의를 통해 정부가 증세(增稅)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세제 ‘칼질’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 드러났다. 누차 지적했듯이 극빈층 복지 혜택을 늘리기 위해선 정부가 예산낭비를 줄이고 사업도 축소하는 게 우선이다. 장래의 나라 살림살이를 좌지우지할 중장기 세제개편을 더는 ‘정권 코드’ 입맛대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곽 위원장의 문제 제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수용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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