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이언 브리머]美-러시아 불협화음 커진다

  • 입력 2006년 4월 18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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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났을 때 양국 간 힘의 불균형은 뚜렷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 탈퇴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옛 소련 지역 확대가 양국 관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푸틴 대통령을 설득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미국으로부터 아무런 양보도 얻어내지 못한 것이 러시아의 2류 국가 전락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국민을 설득해야 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미국과의 우호를 선택했다.

3개월 후 9·11테러가 발생하자 백악관과 크렘린은 ‘테러’란 공동의 적에 맞서 힘을 합쳤다. 양국 관계가 최고 정점을 맞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후 양국 관계는 악화 일로를 치닫고 있다. 올해 들어 불협화음은 더 커지고 있다.

양국 관계가 나빠진 데는 국제유가 상승이 한몫하고 있다. 세계 2위의 산유국이자 주요 천연가스 공급국인 러시아는 고유가 덕분에 경제가 날로 좋아지고 있으며 자신감도 얻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다시 강대국으로 부상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게 됐다.

자신감이 생긴 러시아는 미국과 의견이 대립할 때 여간해서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란 핵문제와 관련해 러시아는 미국의 강경대응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해 왔다. 올해 3월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을 때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연구용 소규모 우라늄 농축은 허용하자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미국은 러시아의 제안을 무시했지만 이란을 상대로 한 협상력은 손상을 입게 됐다.

러시아는 이란에 재래식 무기를 공급해 온 주요 국가이다. 만약 이란이 핵개발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러시아 기업이 원자로 건설 계약을 따낼 가능성이 높다. 세계 각국은 미국-이란 핵 갈등으로 유가가 오를 것을 걱정하지만 러시아는 오히려 반기고 있다.

1월 모스크바는 친(親)서방 경향의 우크라이나를 길들이기 위해 천연가스 공급을 끊음으로써 워싱턴과 또 한 번 갈등을 빚었다.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투자도 조만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3월 허미티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빌 브라우더 최고경영자(CEO)는 러시아 입국을 거절당했다. 러시아는 국가안보 위협을 내세웠지만 실은 세계 최대의 러시아 투자기업인 허미티지가 부패한 러시아 기업인들을 법원에 고발해 러시아 권력층에 ‘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외자유치보다 자국의 강력한 기업가 집단을 보호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러시아의 중국 접근도 부시 행정부의 걱정거리이다. 3월 푸틴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포괄적 에너지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중국이 얻게 될 이익은 미국과 일본에는 손실을 뜻한다.

러시아가 독자 외교를 펼칠 수 있는 것은 풍부한 오일달러와 푸틴 대통령의 높은 국내 지지도 덕분이다. 부시 대통령의 인기 하락과 유럽의 대(對)러시아 에너지 의존 상승도 ‘웬만한 서방국가의 비판은 무시해도 좋다’는 자신감을 푸틴 대통령에게 넣어 주고 있다.

2008년 푸틴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이다. 막후 실력자가 되거나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의 회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차기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기업가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대미 관계도 좋아지기 힘들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 힘의 불균형이 더는 과거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언 브리머 유라시안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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