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명]어린이 화재 참변 누구의 책임인가

  • 입력 2006년 2월 13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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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소방관 아저씨 빨리 와 주세요. 엄마! 아빠!” 그들은 죽기 전까지 이런 말들을 수없이 외쳤을 것이다.

9일 강원 영월군에선 7세, 6세, 4세 소녀가 불길에 휩싸여 짧은 삶을 고통스럽게 마감했다. 이들은 소방서에 두 번이나 전화를 하며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렸다. 밖으로 뛰쳐나가 보려고도 했고 창문을 깨보려고도 했지만 고사리 손으론 역부족이었다.

10일 서울에서도 11세 소년이 안타깝게 화마 속에서 스러져 갔다. 5세 때부터 자폐증을 앓아 온 김모 군은 다른 아이들보다 3년이나 늦은 지난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최근 김 군은 친구들과 어울릴 정도로 병세가 많이 호전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치료를 위해 헌신하던 부모의 노력은 한 줌의 재가 돼 버렸다.

두 화재사고는 여러모로 닮았다. 모두 부모가 집에 없었다. 맞벌이 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이 늘면서 아이들만 집을 지키는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소방관이 모두 ‘플래시 오버(Flash Over)’ 시간을 넘겨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끄기 힘들 정도로 불길이 확산되는 시점을 뜻하는 플래시 오버란 개념은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선진국에선 이 시간을 넘기기 전에 화재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원칙이다.

본보는 최근 기획기사를 통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의 지난해 1년치 화재 현황을 분석해 한국의 플래시 오버가 5분이라는 사실을 규명해 냈다. 이 시간을 넘겨 현장에 도착하면 진화 시간이 현저히 길어지고 인명과 재산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6대 도시의 5분 내 도착률은 53.2%에 그친다. 절반에 가까운 화재에 한국 소방 당국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방방재본부나 소방서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차가 막히니 방법이 없다. 요즘 시민들은 소방차가 지나가도 양보하지 않는다.”

“인원과 장비를 늘려 달라고 때마다 얘기하지만 예산이 없다.”

도시는 점점 팽창하는데 소방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방 한쪽에서 웅크리고 앉아 불길 속에서 절규할 우리의 아이들은 언제든 또 생길 수 있다.

이재명 사회부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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