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경근]정보기관의 불법감청 문제는 정치에 있었다

  • 입력 2005년 12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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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X파일로 명명된 불법 정치자금 내용을 담은 불법 감청(도청) 테이프가 한 방송사 기자에 의하여 세상에 드러났을 때의 파장은 크고 넓었다. ‘도청의 불법성’과 ‘도청 내용 공개 및 수사’라는 큰 줄기의 어느 것에 중점을 둘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5개월 후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도청사건’의 수사결과를 공식 발표하였다.

검찰은 사건의 본질을 도청의 불법성에 두고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을 충실히 적용하였다. 다만, 김영삼 정부 시절 도청 내용이 안기부장의 대통령 주례보고서에 포함됐던 것으로 드러났고 이를 공직자가 아닌 대통령 차남에게 보고했는데도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법적 처분을 하지 못했다. 이에 비하여, 김대중 정부 때에는 대통령이 도청 사실을 몰랐을 것으로 판단했는데도 두 국정원장은 구속 기소되었다. 이는 국가권력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제도의 재검토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또한 도청의 주된 대상이 대선 동향과 정당활동 등이었던 점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문제는 국정원이 아니라 정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이 정치에 이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검찰은 2002년 4월 국정원이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폐기한 이후 현재까지 휴대전화 도청은 물론 합법 감청도 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냈다. 이 점은 ‘반드시’ 진실이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정원은 물론 검찰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또한 합법 감청도 하지 않았다면, 국정원의 본연 업무인 국가안보나 중대 범죄의 수사를 위한 활동도 하지 못했다는 말인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난감하다.

다음으로 도청 내용 공개에 관한 것이다. 통비법은 도청자료의 공개와 증거 사용의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계기로 하는 수사’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검찰은 통비법의 제약이 없더라도 “테이프 내용을 단서로 한 수사가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수사 불가론을 피력했다. 대부분 공소시효가 완성됐을 것이고, 시효가 남았더라도 증거 수집에 어려움이 커서 당사자 자백이 없는 한 수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견해다. 실제 이번 도청수사와 관련해 고발된 삼성의 1997년 대선자금 사건도 관련자들이 혐의를 전면 부인한 데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은 공소시효가 지나 버려 형사처벌 대상이 된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1997년의 불법 대선정치자금 거래 현장을 도청한 내용을 공개한 방송사 기자와 월간지 편집장 모두 통비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점이다. 도청으로 얻은 결과물이란 사실을 알고서도 이를 보도한 것은 통비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검찰에서도 이에 관련한 미국의 판례 경향은 알았을 것이다. 도청 테이프 입수에 관여하지 아니한 언론사의 보도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하여 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검찰이 이번 사건의 본질을 국가권력의 도청은 범죄행위라는 데에 두고 시작하여 결론을 내린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공익 차원에서 이를 보도한 언론인들을 굳이 기소한 것은 전체적으로 관계되는 사회적 이익의 형량 조절에서의 고려가 좀 더 있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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